/ⓒ박수동

40년 마감 시간에 쫓기다 만화가 박수동(81)씨는 2008년 충북 음성의 한 야산으로 이사 갔다. 명랑만화 ‘고인돌’로 유명한 박씨는 “어휴, 지긋지긋해 자유를 찾아 도망왔다”고 말했다. 술 좋아하는 박씨는 이백이나 두보 같은 술꾼 시인의 음주시(詩)를 또한 사랑했다. “우리나라 술꾼 시인은 없을까?” 그러다 고려 문인 이규보에게 매료됐다. “무게 잡는 한시(漢詩)와 거리가 먼 여유와 해학”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이른바 ‘한만시’다. 이규보가 남긴 한시와 만화의 결합. “취미 삼아 2~3년 전부터 화첩에 끄적였다. 술 한잔 걸치고 그리기도 했다.” 화집 10권 분량이 쌓였다. ‘고인돌’에서 보여준 특유의 익살이 여백 큰 시적 정취와 만나 고졸한 수채화를 이룩한다. 일련의 그림을 서울 팔판동 아트파크에서 30일까지 처음 선보인다. ‘철인 캉타우’ 만화가 이정문과의 2인전으로, 박수동·이정문·이두호·윤승운·고(故) 신문수 5인이 합동으로 그린 마지막 그림도 최초 공개된다.

올여름, 이규보의 ‘동산에서 매미 소리를 듣다’를 읽던 박씨는 붓을 들었다. “감히 높은 버들 곁에 가지 못함은/ 그 가지 위 매미를 놀래킬까 봐/ 다른 나무로 옮겨 가게 하지 마라/ 한 곡조 끝까지 듣고 싶단다.” 그림 속 노인이 버드나무 뒤에 숨어 매미 소리에 귀 기울인다. 간밤 큰 비에도 건재한 여름의 노래에 안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