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오, 영화

“‘극한직업’ 이후 가장 많이 웃었던 한국 영화.” 최근 영화계 인사들의 말을 듣고서 설마설마하면서 극장을 찾았다. 잠시 후 좌석 전후좌우가 차례로 웃음바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말이 실감 났다. 지난 24일 개봉한 한국 코미디 영화 ‘육사오’(감독 박규태)가 관객들의 소문 속에서 주말 흥행 1위(총관객 47만명)에 올랐다.

만약 57억원의 1등에 당첨된 로또 복권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북으로 날아간다면….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만화적인 가정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창공에서 나풀거리는 낙엽을 비췄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첫 장면처럼, ‘육사오’ 역시 로또 복권이 도심 한복판에서 차량 바퀴를 거쳐 전방 부대의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의 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뿔싸. 경계 근무 중 순간적 실수로 책에 꽂혀 있던 당첨 복권이 그만 바람을 타고 북으로 넘어간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가 비추는 책의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하마터면 남들처럼 살 뻔했다.’ 천우는 당첨 복권을 되찾기 위해 경계선을 넘을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영화 ‘육사오’에서 남북 병사 역할을 맡은 배우 고경표(왼쪽)와 이이경. /씨나몬㈜홈초이스

초반 설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박찬욱 감독의 2000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패러디 성격이 강하다. 당장 남북의 병사가 조우하는 장면에서 북한 병사가 부는 휘파람부터 그렇다. 경계 근무 도중에 용변이 급한 병사의 사연이나 한밤의 불꽃놀이 같은 사격 장면도 알뜰살뜰하게 재활용했다.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은 이번에는 ‘공동 급수 구역(Joint Supply Area)’으로 바뀌었다.

20여 년 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한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비극이었다면, 이번에는 시종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 희극에 가깝다. 남북 대치 상황을 바탕으로 깔고 가면서도 군대 개그 등을 통해서 끊임없이 폭소의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헤어질 결심’에서 형사 역을 맡았던 고경표와 청춘 시트콤 ‘으라차차 와이키키’ 등에서 코믹 연기를 선보였던 이이경이 남북 병사로 콤비를 이뤘다. 예측을 뒤엎는 반전으로 상투적 결말을 피해 가는 흐름도 신선하다.

영화 '육사오(6/45)' 포스터

‘달마야 놀자’의 각본을 쓰고 ‘날아라 허동구’를 연출한 박규태 감독의 신작. 제작비 50억원대의 중소 규모 작품이지만 올여름 대작이 줄줄이 흥행 부진에 빠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이고 있다. 화려한 액션이나 가벼운 코믹처럼 장르적 성격이 분명한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다는 점도 최근 극장가의 특징이다. 어쩌면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마음부터가 달라지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두 시간 동안 확실하게 웃겨달라’는 목표만큼은 확실하게 이뤄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