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표지’를 하고 있는 인기 도서들. ‘불편한 편의점’(우측 하단) 성공 이후 건물 표지 디자인의 유행이 시작됐다. /그래픽=허하영, 그림=나무옆의자

최근 발간되는 소설과 에세이 표지에는 ‘동네에서 볼 법한’ 친숙한 건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편의점, 목욕탕, 서점, 사진관… 장소는 다르지만 모두 일상적인 공간이다. 2020년 나와 작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 1위를 차지한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의 백화점 표지가 ‘건물 표지’의 서막을 알렸고, 작년 4월 출간돼 현재까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이 장작불을 지폈다. 평범한 동네 편의점이 그려져 있는 이 책 이후론 건물 표지 책들이 ‘쏟아지는’ 수준. 이후 건물이 그려진 소설∙에세이만 약 50종이 나왔다. 정중앙에 건물이 그려져 있는 표지는 이미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로 자리 잡아 ‘베스트셀러의 조건’이라는 말도 나온다.

교보문고 7월 소설 베스트셀러 20위 중 건물이 그려진 표지는 6개. ‘불편한 편의점’과 ‘달러구트 꿈 백화점’ 시리즈가 순위권에 포진한 가운데, 건물을 내건 책들이 눈에 띈다. 황보름 작가의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클레이하우스, 4위) 표지엔 후미진 골목길에 위치한 2층 높이 아담한 서점 건물이 그려져 있고, 작년 소설 2위를 차지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인플루엔셜, 16위)에는 흰색의 도서관 건물이 형상화돼 있다. 도시 생활을 정리한 주인공이 휴식을 찾아 교외 지역에 독서 휴식 공간을 연다는 내용의 ‘책들의 부엌’(팩토리나인, 19위)의 표지엔 나무에 둘러싸인 2층 규모 독서 공간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표지에 책의 소재가 되는 건물을 걸어둔 인기 도서가 많다. ‘여기는 커스터드, 특별한 도시락을 팝니다’(필름)와 ‘하쿠다 사진관’(놀), ‘수상한 목욕탕’(문예춘추사)의 표지엔 각각 도시락 가게와 사진관, 목욕탕 건물이 그려져 있다.

표지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각기 다른 업종이지만, 색감과 묘사 방법은 비슷하다. 쨍한 파스텔톤 색감이 주로 사용되고, 건물은 샛초록 나무들로 포근히 둘러싸여 있다. 건물 앞에 한두 사람이 지나다니거나, 손을 흔들기도 한다. 강렬한 색감으로 일상적 장면을 정갈히 묘사한, 일명 ‘데이비드 호크니’ 방식. 표지만큼 작품의 내용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주로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위로와 감동을 주는 전개다. 건물 표지 유행의 시초 격인 ‘불편한 편의점’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된 서울역 노숙인 출신 주인공이 동네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이다.

건물 표지 디자인의 원조는 2012년 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에 그쳤을 뿐, 지금처럼 출판계가 건축계가 되진 않았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코로나 이후 친구∙이웃들과의 소통이 단절되면서 일상 대화를 통해 위로를 주는 작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일상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자 그 공간들이 표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집콕’의 영향으로 도서 판매량이 늘면서, 새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친근하고 편안한 공간을 소재로 한 작품 기획이 늘어났다는 것도 한 출판사 관계자의 분석이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표지로 책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책은 인상에 남는 것이 드물다” “한 출판사에서 콘셉트를 정해 나오는 줄 알았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책 표지 디자이너 A씨는 “최근엔 노골적으로 ‘불편한 편의점’처럼 건물 표지를 그려달라는 출판사들이 있어 작업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시장 불황이 계속되면서 하나의 성공 사례가 나오면 그 책을 따라가는 ‘안전한 선택’이 이어지고 있다”며 “안정적인 선택으로 인한 진부함이 오히려 독자들을 떠나게 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