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1930년대 거리엔 '마스크黨'이 넘쳐났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스크를 필수품처럼 쓰는 이들이 많았다. 검은 색 마스크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요새 길에 나가보면 여자나 남자를 말할 것없이 ‘마스크’들을 하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게 되는데….’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요즘 일상을 묘사한 것같다. 하지만 80여 년 전 경성 풍경이다. 1935년 12월27일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이 기사 제목은 ‘보기 거북한 ‘마스크’ 黨들’. 남녀 불문,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비슷한 시기,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기림 수필에도 마스크가 등장한다. ‘초겨울이 되어 부엌에서 김장 준비에 착수하는 눈치가 보이면 벗은 벌써 약국에 가서 마스크를 사온다…겨울 동안에 내가 조금이라도 감기나 걸려 드러누으면 그는 바로 나를 찾아온다. 방 안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는 ‘마스크’를 벗는다. 그러고는 그는 감기에 걸리지 않고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자신의 행운을 가장 자랑스럽게 선전한다. 딴은 ‘마스크’나 써보았을걸,하고 나는 잠깐 후회한다.’(‘어느 오후의 스케-트 철학’1, 조선일보 1935년2월19일)

시인 겸 문학평론가 김기림(왼쪽)은 ‘반(反)마스크 당(黨)’이었다. 시골 조카에게 편지를 보낼 땐 ‘너는 마스크를 쓰지 말아라’하고 꼭 덧붙일 정도였다.

◇'反마스크黨' 김기림

김기림은 ‘반(反)마스크 당(黨)’이었다. 시골 조카에게 편지를 보낼 땐 ‘너는 마스크를 쓰지 말아라’하고 꼭 덧붙일 정도였다. ‘신장이 오척(尺)삼사촌(寸)을 넘는 체격 당당한 장부의 입과 코에 검은 ‘마스크’가 걸려 있는 꼴이란 나는 비록 천하의 약장사들의 항의를 받는 한이 있을지라도 그렇게 보기 좋은 풍경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남성다움을 해친다는 것이다.

여성미 훼손론(論)도 뒤따른다. ‘여자의 얼굴의 미(美)란 그 오십퍼센트 이상이 상긋한 코와 꼭 다문 입 맨드리(맵시, 모양새)에 깃들여있는 것인데 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들의 얼굴의 이 중요한 부분을 불결한 마스크로서 가려버리는겔까.’

환자를 위한 의료용 마스크 착용은 예외로 쳤다. 또 ‘남을 꼬집는 데만 익숙해버린 문예평론가 ‘까십’자’ ‘언제든 명예훼손죄에 걸릴 수있도록 남의 험구나 실언만 하고 돌아댕기는 종족’에게도 마스크 착용을 당부한다. 글쟁이다운 유머다.

마스크는 흰색으로 쓰고, 자주 천을 갈아줘서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쓴 조선일보 1931년1월27일자 기사 '마스크는 흰 것이 제일'.

◇1920년 스페인 독감 직후 등장

‘마스크黨’은 이 땅에 언제부터 생겼을까. 과학사 연구자인 현재환 부산대 교수에 따르면, 1920년 쯤 전염병 방역 도구로 마스크가 등장했다. (현재환, 홍성욱 엮음, 마스크 파노라마, 문학과지성사, 2022) 1918년~1919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당시 조선엔 마스크가 널리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4차 유행이 진행된 1919년 12월이 돼서야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조치가 시행됐다. 1919년12월27일 경기도 지사가 공포한 ‘유행성감모예방심득(心得)’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물론 타이완 총독부도 1918년 11월 환자 가정의 마스크 착용을 담은 유행성 독감 예방 규칙을 배포했다. 조선은 왜 마스크 착용이 1년 넘게 늦었을까. 스페인 독감은 1918년 9월부터 조선에서도 환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해 그해 겨울 정점에 달했다. 몇 달 새 사망자만 14만명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총독부가 왜 마스크 착용을 서두르지 않았는지 정확한 사유는 알 수없다. 다만, 1919년 전국적으로 번진 3.1운동 여파로 총독부가 모든 행정력을 정치적 혼란 수습에 동원했기 때문에 경찰 중심의 위생 관리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킬 여력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한다.(현재환, 식민지 조선에서의 마스크’ 203쪽)

◇홍역, 성홍열 등 전염병 돌 때마다 마스크 강조

마스크 착용은 1920년대 들어 신문을 통해 권장됐다. 유행성 독감은 물론, 홍역, 성홍열, 기면성 수막염 등 전염병이 돌 때마다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는 기사가 났다. ‘조선 뉴스라이브러리’를 통해 1920년대 지면에서 ‘마스크’를 검색하면, 44건의 기사가 뜬다. 독가스 방지용 마스크도 간간히 있지만 전염병 감염 예방을 위한 마스크 기사가 대부분이다.

1921년 봄 진도군에 유행성감기가 창궐했다. ‘영양불량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폐렴까지 병발되야 노약(자)은 사망한 자가 적지 않았’는데, ‘모르희네(모르핀)주사를 실시하야 위독에 빠지게 한 일도 많이 있었’을 만큼 위험했다. ‘예방주사를 실시하거나 그렇지 아니하거든 ‘마쓰구’를 사람마다 실시하라운々하였다더라’고 했다.(’진도군의 感冒 창궐’, 조선일보 1921년4월13일)

◇'반드시 마스크를 입에 걸고 다닐 것’

1925년 초 경북에 홍역이 돌아 몇 달만에 환자가 1만명 발생하고, 이중 200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찰에서 알면 잡아간다고 하여 병자가 있으면서도 절대 비밀에 붙여가지고 남과 조금도 꺼림없이 교통을 함으로 병은 점점 만연되고….’(‘홍역환자 만여명’, 조선일보 1925년4월20일) 식민 당국에 알려져 단속 대상이 될까봐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전염병은 들끓었다. 기사 뒷부분, 의사(김현경)의 말을 빌려 ‘반드시 마스크를 입에 걸고 다닐 것’을 당부하고 있다.

1925년 말 성홍열이 유행하자 전문가(한성의원장 김기영)의 예방법 및 주의할 점을 실은 기사가 나갔다. ‘될 수 있는 대로 밖에 데리고 나가 찬 공기를 쏘이지 아니하는 것이 좋고 부득이한 경우에 밖에 나가게 되면 잊어버리지 말고 꼭 ‘마스크’를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마스크’라 하는 것은 겨울에 일본 사람들이 흔히 하고 다니는 것을 우리가 익히 보는 터인즉 별로히 설명할 필요는 없지마는 ‘까제’나 소독한 헝겁을 넙적하게 척척 접어 코에 대이고 좌우로 끈을 만들어 귀에 거는 것이니 찬공기가 직접 호흡기 속에 접촉됨을 막는 것이다.’(‘근래 유행하는 성홍열’, 조선일보 1925년12월25일) 당시까지 마스크 착용이 일본인만큼 일반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있다.

◇1930년대의 마스크 유행

1931년 유행성 독감이 창궐했다. 1918년~1919년의 스페인 독감 유행 때와 견줄 정도로 심각했다. ‘유행성 감기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 통계를 보면 반드시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것인가 합니다. 동양에서는 대정7,8년에 크게 유행하여 다수 인류의 생명을 빼앗은 일이 있었는데, 그후 10년만인 금년에 이 감기가 또 몰려다닙니다. 조선안에는 그 감기에 걸린 자가 하도 많음으로 수를 알 수없으나 이번의 유행 감기는 그다지 악성은 아닌가 합니다.’(‘십년만에 또 다시 유행성독감 창궐’, 조선일보 1931년2월6일) 총독부 위생과장이 ‘남의 말’처럼 전하는 유행성 독감발생 현황이다. 위생과장은 독감 예방 조치로 ‘마스크 착용’을 내세웠다.

◇이헌구와 백석의 마스크론

마스크는 흰색보다 검은색 마스크가 더 유행했던 모양이다. ‘일기가 춥다든가 기후의 변화가 있게 되면 입에다가 검은 ‘마스크’를 대고 다 사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하야 겨울만 되면 ‘마스크’를 거리에만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신경이 과민한 사람은 방안까지 하고 있게 되어 마치 ‘마스크’시대나 된 것 같은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입마개는 노인이나 할 것’, 조선일보 1932년1월31일)

문학평론가 이헌구는 도서관 열람실 풍경을 주제로 글을 썼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층 주차장 자리에 있던 총독부 도서관을 묘사했을 것이다. ‘내 바로 옆에는 ‘마스크’로써 비상시적 무장을 하고 나형(裸形)의 체구가 두셋씩 끼어있는 의학서류를 펼쳐놓고 앉아 골똘히 다른 한 책과 대조해가면서 빨간 연필을 놀릴 새 없이 줄줄이 가로 따라가고 있다.’(‘도서관 풍경’上, 조선일보 1937년3월14일)

시인 백석의 수필 ‘입춘’에도 마스크가 등장한다. 고향 마을의 겨울을 추억하며 쓴 글이다. 여기엔 외투, 장갑과 함께 마스크가 겨울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나온다. ‘그런 소년(少年)도 이제는 어느듯가고 외투(外套)와 장갑과 마스크를 벗기가 가까워서 서글픈 마음이 없듯이 겨울이 가서 슬퍼하는 슬품도 가버렸다. 입춘(立春)이 오기전에 벌써 내 썰매도 노루도 멧새도 다 가버린 것이다.’( ‘입춘’, 조선일보 1939년2월14일)

◇비위생적 마스크는 반대

마스크 반대론도 만만찮았다. 특히 마스크가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를 든 전문가들이 꽤 있었다. 앞의 조선중앙일보가 ‘마스크 黨’을 비판한 이유는 ‘위생’과 ‘미용’이었다. 전염병 감염을 막기 위한 위해 마스크를 쓰는데, 비위생적이라는 얘기는 무슨 뜻일까. ‘내뿜는 공기를 그 ‘마스크’안에서 다시 들여마시게 되니까 공기가 아주 더럽습니다’ ‘입김이 자꾸 눈 있는데로 올라가서 속눈썹에 김이 어리게 됩니다. 그 결과로 속눈썹이 자꾸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다음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같다. ‘속의 ‘까제’를 잘 안 갈고 보면 그 비위생적이란 말 할 수없습니다’.(이상 ‘보기 거북한 ‘마스크’ 黨들’, 조선중앙일보 1935년 12월27일) 마스크 안에 부드러운 천을 대어 쓰고 교체하는 식으로 마스크를 재활용했기 때문에 속의 ‘까제’를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불결해진다는 얘기다.

불결한 마스크는 도리어 해독’(조선일보 1939년2월22일), ‘마스크는 하되 까제를 자주 갈 일’(조선일보 1937년12월9일)처럼 마스크 위생을 강조하는 기사는 잊을 만하면 실렸다.

◇'마스크, 여성의 미를 가리다

마스크에 대한 비판론 중 하나는 여성의 미를 가린다는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는 그 어여쁜 코를 또 가장 표정의 변화가 많고 미묘한 입을 가리고 다닌다는 것은 여간 자미적은 일이 아닙니다.’(’보기 거북한 ‘마스크’ 黨들’, 조선중앙일보 1935년 12월27일)

‘근자에 보면 무슨 시체인지 인물도 얌전해보이는 여학생간에 마스크라고 하야 코까지 가리우는 입마개를 하고 다니는 것이 많다. ▲감기때문에 그런 것을 한다고도 하지만 감기에 마스크가 얼마나 유효한지도 의문이지만,반드시 그러치도 않은 모양이니 ▲정정당당하고 명명백백 하여야 할 처녀들이 무엇때문에 코입을 가리우고 다닐까.▲무엇이 부끄러울까, 무엇을 숨길 일이 있어 그럴까’(‘색연필’, 조선일보 1939년2월14일)

마스크 반대론이 엉뚱한 곳으로 튄 셈이다.

마스크를 3년 여 입에 붙이고 살았지만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안경에 입김까지 서리면 시야가 흐려져 위험하기까지 하다. 100년 전 홀연히 나타난 ‘입마개’를 하고 살았을 마스크 당(黨)의 기분은 어땠을까. 마스크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게 코로나 19 덕분이라니, 고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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