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윤이와 재희에게


우리가 가족이 된 지 한 달이 지났구나. 엄마 아빠의 결혼을 축복해줘서 고마워.


오늘부터 엄마 아빠는 뒤늦은 신혼여행을 떠날 거야.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이제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단다.


냉장고에 반찬 있어. 용돈 카드에 용돈 넣었는데, 혹시 부족하면 연락해.


말 안 하고, 우리 둘만 떠나서 미안하다. 다음에는 우리 넷이 여행 가자. 알았지?


그럼, 일주일 뒤에 만나자.


소윤이와 재희를 사랑하는 아빠가


추신: 둘이 싸우지 말고, 잘 지내렴. 돌아와서 확인할 거야.

-엄마


아빠와 새엄마가 여행을 떠났다. 갑자기 편지 하나만 써놓고 떠났다. 마음대로 결혼하더니, 여행도 마음대로 떠났다.

“편지 써놓고 간 거야?”

“아니. 나랑 너 버리고 도망갔어.”

“도망가긴 뭘 도망가.”

“여행 갈 거면, 나랑 너도 데리고 갔지.”

아빠랑 새엄마가 여행 간 것보다 소윤이랑 같이 사는 게 끔찍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버티지? 이럴 거면 간다고 미리 말해주지. 달라지는 건 없어도, 마음의 준비는 했을 텐데.

“왜? 나도 너랑 같이 사는 거 싫어.”

소윤이가 먼저 화를 냈다.

“누군 좋은 줄 알아?”

소윤이가 그러니까 나도 짜증이 났다.

소윤이랑 같이 사는 건 생각보다 불편했다. 소윤이랑 나는 잘 안 맞았다.

나는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일주일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나중에 독립해서 혼자 사는 게 꿈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소윤이는 아침에 안 깨우면 점심시간까지 잤다. 늦잠 자면 학교에 안 갔다. 공부는 관심 없고 학원도 안 다녔다. 밥이나 과자는 잘 먹으면서, 청소나 설거지는 안 했다.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소윤이를 내버려 두고 혼자 학교에 갔다.

일러스트=박상훈


아빠, 언제 와?

소윤이랑 같이 못 살겠어.

빨리 오면 안 돼?


아빠에게 보낼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 아빠는 여행 간다고 해놓고, 전화 한 번 안 했다. 새엄마랑 여행하는 게 재밌나 보다. 새엄마한테 전화가 왔을 때, 잘 지낸다고 거짓말했다.

‘아빠랑 같이 살기 싫으면 영국으로 와. 엄마가 비행기표 보내 줄게.’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고 영국에서 유학 중이다. 힘들면 언제든지 영국으로 오라고 했다. 엄마 공부를 방해하기 싫어서, 엄마가 보고 싶어도 꾹 참았다.

새엄마한테 말할까? 소윤이 때문에 힘들다고? 엄마한테는 말하는 게 쉬운데, 새엄마한테는 말 못 하겠다.


처음부터 소윤이가 싫었다. 소윤이도 내가 싫었을 거다. 갑자기 나랑 나이가 똑같은 자매가 생겼으니까.

“얘들아, 인사해. 친구야.”

“잘됐다. 둘이 친하게 지내면 되겠네.”

아빠랑 새엄마는 나랑 소윤이한테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

“왜요?”

“싫어요.”

나랑 소윤이는 자매가 싫었다. 언니, 동생, 오빠보다 외동이 낫다. 자매가 있으면, 엄마 아빠 사랑을 빼앗기고 장난감이나 초콜릿을 양보해야 한다.

새엄마랑 소윤이랑 같이 사는 게 불편했다. 아빠에게 새엄마랑 소윤이랑 같이 살기 싫다고 하소연했다가 혼났다. 왜 나만 양보하라고 해?

아빠랑 새엄마는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나랑 소윤이가 싫다고 했다. 한집에서 같이 살아도 학교에서 마주치면 못 본 척했다.

얼마 전 학교에서 공개수업이 열렸다. 아빠랑 새엄마가 학교에 왔다. 아빠랑 새엄마가 담임 선생님께 결혼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소윤이와 나는 학교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싸웠다.

“야, 김재희. 오늘 집에 일찍 들어와. 친척들 온대.”

“학원 특강 있어.”

“난 분명히 말했다.”

“너나 잘해.”

소윤이가 그러니까 자꾸 나쁜 말만 나왔다. 나랑 소윤이는 학교에서 마주치면 모른 척하거나 나쁜 말을 했다. 나쁜 말은 소윤이한테 안 가고 나한테 돌아왔다. 그래서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마음이 아팠다. 마음이 아픈데 나쁜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쉬는 시간, 소윤이 반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소윤이는 왜 안 왔어? 무슨 일 있니?”

“늦잠이요.”

“같이 오지 그랬어.”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요.”

“내일은 소윤이 꼭 데리고 와.”

“아빠가 재혼한 거지, 진짜 자매 아니에요.”

“그래도 잘 지내면 좋지. 가족이잖아.”

나는 소윤이랑 가족인 게 싫은데, 사람들은 나랑 소윤이가 가족이래.


다음 날, 학교 가기 전 소윤이를 깨웠다. 소윤이가 결석하는 것보다 소윤이네 담임 선생님 잔소리 듣기 싫었다. 웬일인지 소윤이는 금방 눈을 떴다.

“학교 안 가?”

“내 맘이야.”

소윤이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들었다. 깨우기도 귀찮아. 이젠 정말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학교 갔다 집에 왔다. 소윤이는 거실 소파에서 휴대폰 게임을 했다. 탁자에 반짝반짝 별칩 과자가 보였다.

“이거 내 거야!”

“이름 썼어?”

“그건 아닌데….”

“먹어. 난 다 먹었어.”

소윤이가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봉지 안에 별 모양 과자만 남았다. 반짝반짝 별칩은 안에 들어있는 별사탕이 제일 맛있는데, 소윤이가 별사탕을 다 먹어버렸다.

“할래?”

“아니.”

소윤이는 휴대폰 게임을 했다.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에 있는 괴물들을 공격했다. 괴물들이 뿅뿅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소윤이랑 말하기 싫어서 일찍 학원에 갔다. 학원 가기 전에 별사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소윤이가 다 먹어서 속상했다.


학원 갔다가 집에 왔다. 너무 졸려서 숙제도 안 하고 일찍 잤다. 배가 아파서 깼다. 바늘이 콕콕 찌르는 것 같다. 화장실에서 저녁 먹은 걸 그대로 토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소윤이가 내 방까지 따라왔다.

“응급실 갈래?”

“그 정도는 아니야.”

나는 침대에 눕고, 소윤이는 바닥에 누웠다.

“올라와.”

소윤이한테 침대로 오라고 했다.

“불편할 텐데….”

“괜찮아.”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소윤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소윤이가 걱정해주니까 외롭지 않다.


다음 날, 소윤이가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랑 소윤이네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했다. 내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간다고 했다.

“네, 집에 저랑 재희만 있어요. 지금 병원 가려고요.”

집 앞에 있는 병원에 갔다. 소윤이가 보호자 역할을 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진찰받았다. 장염이니까, 매운 음식, 짠 음식을 먹지 말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병원이랑 약국에 갔다가 편의점에서 야채죽과 참치죽을 샀다.

우리는 점심으로 죽을 먹었다. 나는 야채죽을 먹고 소윤이는 참치죽을 먹었다.

“티비 볼래?”

“좋아.”

소윤이가 티비를 켰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음악방송에서 멈췄다. 엔데빌즈가 나왔다.

“날 잡아줘, 흔들리지 않게.”

소윤이는 엔데빌즈 공식 응원봉인 날개봉을 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너 날개였어?”

“응.”

나도 내 방에서 날개봉을 들고 왔다. 우리는 엔데빌즈 노래가 끝날 때까지 응원법을 정확하게 따라 했다.

엔데빌즈 순서가 지난 뒤, 우리는 서로 공식 팬클럽 카드를 확인했다.

“언제부터 좋아했는데?”

“블랙 앤 화이트.”

블랙 앤 화이트는 엔데빌즈의 데뷔곡이다.

“나도.”

“정말 신기하다.”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소윤이한테 미안했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걸. 소윤이가 나랑 같은 엔데빌즈 팬이었다니. 너무 기뻐서 아픈 줄도 모르겠다.

“우리 주말에 공방 갈래? 언니들은 가까이서 보는 게 더 멋있어.”

아빠랑 새엄마는 여행 가고 집에 없는데, 우리도 놀러 가고 싶다. 공방에 가면, 방송국에서 엔데빌즈 언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응. 나도 언니들 보고 싶어.”

우리는 엔데빌즈 팬카페에 들어갔다. 이번 주말에 공방 신청 안내 글이 올라왔다. 안내 글을 읽고 신청 글을 썼다. 우리 둘 다 공방 신청에 성공했다.


드디어 엔데빌즈 언니들을 보러 가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했다. 깨끗이 씻고 엔데빌즈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었다. 준비물은 어젯밤 미리 챙겼다. 엔데빌즈 언니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아침 먹고 집에서 나왔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소윤이는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잠들었다.

두 시간 뒤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에 오니까,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아빠가 새엄마랑 결혼할 때까지.

좋은 기억만 기억하고 싶다. 나쁜 기억이 있다고, 좋은 기억마저 지울 수는 없잖아.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두고두고 꺼내 봐야지.

“다 왔어. 일어나.”

소윤이를 깨웠다.

“으음, 벌써?”

“얼른 일어나. 언니들 보러 가야지.”

“알았어.”

소윤이는 엔데빌즈 언니들 얘기가 나오니까 눈을 번쩍 떴다.

“배고파. 우리 점심 먹자.”

“아직 열두 시도 안 됐어.”

이제 소윤이랑 좋은 기억을 만들고 싶다. 우리 둘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