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학교 폭력 피해자(송혜교·위 사진)의 복수를 다룬 시리즈 ‘더 글로리’는 학폭 가해 주모자 역의 임지연(아래 사진) 등 악역들의 ‘밉상’ 연기도 호평받고 있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 제발 보지 마세요!’

공개 이틀 만인 1일 벌써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세계 5위(플릭스패트롤 기준). 12월 30일에 등장한 김은숙 작가의 학폭 복수극 ‘더 글로리’의 흥행 기세가 매섭다. 그런데 어찌 된 걸까.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에 이은 작가의 새로운 히트작을 향해, 온라인 리뷰 사이트엔 ‘제발 보지 말라’는 애절한 시청자 평이 쏟아진다. 넷플릭스가 파트1(총 8화)만 먼저 공개하고, 나머지 파트2(총 8화)는 3월에 공개키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에서 재미를 봤던 ‘반반 쪼개 보여주기’ 전략이다.

◇본격 복수 직전에 딱 끝낸 ‘더 글로리’ 파트1

/넷플릭스

파트1에서 드라마는 몸과 마음 모두 흉터 투성이인 학폭 피해자 ‘동은’(송혜교)이 10여 년을 준비해 고교 시절 학폭 가해자들의 턱 밑까지 접근하는 과정을 보여준 뒤, 본격적 복수가 시작돼야 할 시점에 딱 멈춰선다. 축구 중계로 치자면 우리 진영에서 빌드업을 시작해 상대 진영 골문 앞까지 간 뒤 슛을 날리기 직전 ‘얼음!’ 하듯 재생을 중단한 것. 그러니 ‘절대 보지 말라’는 평은 거꾸로 이 드라마에 몰입했다가 이후 전개에 대한 궁금증을 못 견뎌하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이자, 역설적 찬사인 셈이다.

‘잘못은 학폭 5인방이 했는데 시청자들이 파트2 기다리다 말라죽게 생김’ ‘근데 와… 이렇게 끝내놓고 3월까지 기다리라고?’…. 시청자 평만 보면 ‘쪼개서 보여주기’로 유료회원을 붙잡아 놓으려는 넷플릭스의 전략은 일단 성공적이다.

‘더 글로리’는 주로 아시아와 중동을 중심으로 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9국에서 1위, 일본 등 5국에서 2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하지만 브라질·네덜란드·캐나다 등에서 5위, 미국·인도·프랑스·케냐 등에서 6위에 오르는 등 흥행에 대륙을 가리지 않아, 앞으로의 성적이 더 기대를 모은다. 싱가포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복수를 기다리기엔 너무 긴 세월 같지만, 관객은 역시 고교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긴 세월 뒤 복수를 실행하는 인물이 등장했던 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넷플릭스 초기의 성공 공식 ‘몰아보기’

'술꾼 도시 여자들 2'. /티빙

사실 ‘몰아 보기’냐 ‘쪼개 보기’냐는 시청자도 OTT도 애간장 태우는 풀기 힘든 문제다. 원래 ‘몰아 보기(binge watching)’는 넷플릭스가 매주 1~2화씩 공개하던 케이블 방송 드라마에 맞서 시청자를 유혹하기 위해 내놓은 초창기 전략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초기 히트작들이 이 전략으로 콘텐츠 소비자의 시청 습관 자체를 바꾸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국내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의 경쟁이 격화되며 전술적 변화도 시작됐다. 디즈니+의 경우 최민식·손석구가 주연한 기대작 ‘카지노’를 지난달 21일 시즌1의 3화까지 먼저 공개한 뒤 매주 1화씩 공개 중이다. 전형적인 ‘쪼개 보기’ 전략. 티빙은 자사 최고 흥행 드라마의 속편 ‘술꾼 도시 여자들 2′(총12화)를 지난달 9일부터 매주 2화씩 공개하고 있다.

◇OTT 경쟁 격화되며 ‘쪼개보기’ 전술 변화

/넷플릭스

‘몰아 보기’는 OTT 입장에서 고위험 고수익 투자다. 잘되면 초반 흥행과 화제 몰이가 가능하지만, 안되면 ‘폭망’이다. 게다가 유튜브 요약 영상이 일반화된 현 상황에선 비싼 제작비 들인 콘텐츠로 유튜버들 좋은 일만 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쪼개 보기’만이 정답도 아니다. 갈수록 성미가 급해지는 시청자들 불만도 적지 않은데다, 서사 구조가 탄탄한 드라마일수록 시청의 흐름이 끊기면 몰입도가 떨어진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배우 이성민이 주연한 디즈니+ ‘형사록’의 경우, ‘쪼개 보기’ 공개로 실시청자 호평에도 불구하고 초반 화제를 일으키는데는 실패했다. 이성민은 당시 인터뷰에서 “매주 2화씩 공개하다 보니 전부 다 나오고 나서 몰아 보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작품 공개 후 피드백이 없어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제 시청자가 여러 OTT 플랫폼을 구독하며 작품에 따라 갈아타는 게 일상이 된 시대. ‘더 글로리’는 시청자와 OTT가 ‘쪼개 보기’냐 ‘몰아 보기’냐를 놓고 벌인 눈치 작전의 최신 사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