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스틸 컷

“연상호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한국적인 SF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스크린 속 고(故) 강수연 배우가 말했다. 지난해 5월 갑작스럽게 떠났던 그 배우가 제작기 영상에선 생전 모습 그대로, 단정하게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12일 오전 서울 광진구 한 영화관에서 열린 영화 ‘정이’의 제작 보고회. ‘정이’는 ‘부산행’ 연상호 감독이 시리즈 세계 1위에 올랐던 ‘지옥’ 이후 다시 넷플릭스와 손잡고 만든 SF 액션 영화다. 배우 강수연의 유작이자 첫 SF 출연작이기도 하다.

인류가 기후변화로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벗어나 우주 궤도에서 살아가게 된 미래가 배경. 강수연은 자신의 어머니이자 35년 전 작전 실패로 식물인간이 된 전설적 용병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책임자 윤서현 역을 맡았다.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 선배가 ‘한번 해보자’고 하신 순간부터 ‘정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영화를 기획하고,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했다. “큰 예산이 필요한 SF 영화인데 어머니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딸의 사적인 이야기여서 영화화 가능성은 불확실했죠. 누가 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강수연 선배가 떠올랐고, 그때부터 꼭 영화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연 감독은 “어렵게 첫 통화를 했을 때 반소매 셔츠 겨드랑이가 다 젖도록 땀이 났다. 그만큼 떨렸다”고도 했다.

배우들은 강수연을 추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처음 강수연 출연 소식을 들었을 때 김현주는 “내가 어떻게 그분 눈을 보면서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처음 뵀던 날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해요. 너무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현장에선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셨어요.” 전투 AI 연구소장을 맡은 배우 류경수는 “강수연 선배님과 한 화면 안에서 연기할 기회가 많았다. 선배님 같은 선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 마음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다.

연 감독은 “혹시 까다로운 분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영화 현장에서 촬영하는 걸 정말 좋아하고 후배들을 아끼는 분이셨다”고도 했다. “촬영 기간 편한 자리를 마련해 배우들과 함께 앉으면 꼭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영화 동아리 학생들이 된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영화 하면서 이런 기억과 느낌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