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전 장우성이 1975년 제작한 화폐 도안용 이순신 영정. 100원 주화에 사용되고 있다. /한국은행 소장

“100원권 화폐용 이순신 영정을 돌려 달라.”

대한민국 표준영정 1호 ‘충무공 이순신 영정’을 그린 동양화가 월전 장우성(1912~2005) 유족 측이 2021년 문재인 정권 당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사실이 본지 취재 결과 확인됐다. 월전의 아들이자 이천시립월전미술관장인 장학구(83)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친일(親日) 화가로 매도되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삐딱 걸음으로 가는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월전은 2001년 김대중 정권 당시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한국화(畵) 거장으로, 그의 충무공 영정(1952년 작)은 박정희 정권이던 1973년 국내 첫 표준영정으로 지정됐고, 이듬해 한국은행 요청으로 월전이 새로 제작한 화폐 도안용 영정은 1983년부터 100원 주화 앞면에 사용되고 있다. 100원 동전은 현재까지 2조2500억여 개가 유통됐다. 유족 측은 해당 영정의 반환과 지난 40년간의 저작권료를 요구하고 있다. 당초 피고는 대한민국이었지만, 피고 경정(更正)을 통해 주무기관인 ‘한국은행’으로 변경했다.

장씨는 “예우는커녕 일부 단체의 친일 주장에 나라가 휘둘리니 울화통이 터졌다”며 “이런 나라에서 받을 것도 안 받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억울했다”고 말했다. “승소한다면 우리처럼 친일 딱지로 냉가슴 앓는 사람들에게 소송 비용을 후원하겠다”고도 했다.

◇“아버지가 그린 100원 동전 이순신 영정 돌려달라”

장학구 관장

월전의 친일 행적 논란은 1990년대부터 있어왔다. 조선총독부 주최 ‘조선미술전람회’에 4회 연속 특선해 추천 화가가 됐고, 일제의 관제 성격이 강했던 ‘반도총후미술전’ 등에도 출품했다는 이유다. 2009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이후 지속적인 표준영정 해제 요청이 접수됐지만, 정부는 사회 갈등 우려를 들어 반려해왔다. 그러다 2019년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고, 지금껏 찬반 양론이 부딪치고 있다. 한국은행은 표준영정 지정 해제 시 동전을 바꾸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족 측은 “‘조선미술전람회’는 당시 조선의 모든 미술학도가 화가로 입문하는 유일한 통로였다”며 “‘반도총후미술전’에는 그림이 비에 젖어 출품도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월전이 해방 직후 조직된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으로 활동했고, 대표적인 친일 문제 연구자 임종국이 쓴 ‘황국신민화 시절의 미술계’(1983)에도 친일 미술가 명단에 월전이 없다는 사실 등을 논거로 들고 있다. 장씨는 “만약 아버지가 정말로 친일 활동을 해 역겹다면 내가 백번이고 사과한다”며 “독립운동가 유달영 선생과 막역한 사이로 집에도 자주 묵으셨는데 친일파였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말했다.

유족 측은 2008년 경기도 이천시에 월전의 작품 및 소장품 1532점, 건물·대지 등 모두 1000억원 규모의 재산을 기증했다. 2004년 이천시 요청으로 월전미술관 건립에 합의하며 밝힌 고인의 유지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천문학적인 액수만큼이나 이례적인 기증 사례였다. 하지만 2021년 장씨는 이천시에 대한 기증품 반환 조정 신청을 법원에 냈다. “시민단체나 시의원들로부터 ‘왜 친일파 미술관에 시민 세금이 쓰이느냐’는 얘기가 들려오니 이럴 바엔 다 찾아서 들고 나가려 했다”면서도 “지난달 시청 측이 화해 의사를 밝혀와 소는 취하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을 상대로 한 소송 변론 기일은 다음 달 3일(서울중앙지방법원)로 예정돼있다. 장씨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며 “오명을 벗을 수 있다면 돈 받는 대신 오히려 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