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휠러(오른쪽)와 아내 모린이 자신들이 펴낸 론리 플래닛 책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책 제목은 1971년 영화 ‘매드 도그 앤드 잉글리시멘(mad dogs and englishmen)’의 노래 가사 ‘lovely planet’을 ‘lonely planet’으로 잘못 알아듣고 정했다고 한다. /플래닛 휠러 재단

“예상은 했지만 세상에나, 10여 년 동안 이렇게나 바뀌었다니! 서울 강남에서부터 시내까지 종일 지하철 타고 다니는데 마치 탐험하는 기분이더군요.(웃음) 내리는 곳곳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오랜만에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감탄사 같다. 그런데 이 남자의 문장은 좀 더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골목과 도시, 그가 길을 물었던 사람들의 반응과 표정, 그가 발 닿는 대로 들어간 노포(老鋪)의 향기 그 모든 것이 어느새 책으로 출간돼 전 세계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모든 여행객의 동반자이자 ‘바이블’로 불리는 세계적인 여행 안내서 ‘론리 플래닛’의 창업자이자 영국 출신 여행 저술가인 토니 휠러(Tony Wheeler·77)가 한국을 찾았다. 12년 만이라고 했다. 17일 저녁 만난 그는 온종일 걸어다녀서인지 다소 상기된 얼굴이었다. “(여행을 위해) 신발끈을 조일 때가 가장 설렙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 그의 공식적인 세계 일주의 첫 출발지가 바로 서울이다. 전날 서울에 도착해 반나절 만에 강남에서 시내까지 종횡무진 걸어다녔다. “전 세계가 ‘K팝’을 이야기하기에 서울 강남이 버킷 리스트에 있었습니다. K팝 광장(코엑스)에 꼭 가보고 싶었지요. 봉은사도 다녀왔고,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경복궁도 다녀왔지요.”

영국 일간 ‘더 타임스’ 집계(2019년 기준) 순자산 1억3000만유로(약 1875억원) 자산가인 그는 비서 한 명 없이 그가 직접 온라인으로 예약한 강남의 4성급 부티크 호텔에 숙박하며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누볐다. 1972년 400달러 여행자 수표 하나 손에 쥐고 아내 모린 휠러와 함께 중고차 한 대로 세계 여행을 시작했던 그 시절이나 다름없이 그에겐 작은 배낭과 오래된 수첩이 들려 있었다. 수요일과 목요일은 부산을 찾은 뒤 페리를 타고 일본을 방문할 예정. 이후 크루즈배로 알래스카를 거쳐 미국과 유럽 등을 찾을 계획이다. 9월에는 지난 2월 대지진 참사를 겪은 튀르키예를 찾아 전 세계에 튀르키예 관광을 홍보하고 지원할 생각이다. “여행은 내가 살아 있고, 성장하는 것을 증명하는 인생의 이력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제게 여행할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즐거울 따름입니다.”

1946년 영국에서 태어난 그에게 여행이란 또 다른 자아였다. 항공사 공항 관리자인 아버지를 따라 파키스탄, 바하마, 미국, 영국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런던 워릭대학 공대와 런던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은 그는 아내를 만나 호주에서 가정을 꾸렸다. 제약사 직원이었던 토니와 와인 회사에 다녔던 모린은 ‘방랑자 기질’을 숨기지 못했다. “당시 갭 이어(gap year·학업이나 직장 생활 도중 재정비를 위해 각종 체험 등으로 식견을 넓히는 것)란 말도 없었을 때에 저희 부부는 1년 계획으로 세계 일주를 떠났어요. 더 큰 세상을 보고자 했지요.” 유럽과 아시아를 횡단해 목적지인 시드니에 도착했을 때 남은 것은 27센트와 낡은 카메라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메모하기와 글쓰기를 즐겼던 둘은 집 부엌에서 96페이지짜리 ‘Across Asia on the Cheap’(돈 안 들이고 아시아 횡단하기)를 펴냈다. 기록 삼아 냈던 책이 일주일 만에 1500부가 팔리면서 지금 ‘론리 플래닛’의 시초가 됐다. 직접 묻고 취재하고 탐구한 ‘찐’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은 500여 필진을 거느리며 이후 전 세계 매년 700만부 이상 팔리는 최고의 여행 가이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1년 BBC 월드와이드에 2억7000만달러(약 3600억원)에 지분을 모두 팔았지만 여전히 자유 기고 등을 하고 있다.

사업에서 손을 뗀 대신 기부 등을 통해 플래닛 휠러 재단과 런던비즈니스스쿨 휠러 연구소를 통해 빈곤 지역 개발과 교육, 난민 돕기, 인권 증진 등에 초점을 맞추며 현재 20국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 고고학 유적지 보호 프로그램도 후원하고 있다.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른 이들과 교류하며 나의 단점을 알아채기도 하죠. 챗 GPT 시대에 가이드북이 뭔 소용이냐 하겠지만, 디지털에 난무하는 가짜 정보를 완벽히 걸러낼 수 있을까요? 일일이 발로 뛰어다녀 보고, 사람의 땀방울이 닿아봐야 숨은 장소도 발굴할 수 있지요. 그것이 여행의 참맛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