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더부살이해 온 둘리 패밀리. 고길동 머리 꼭대기에 앉은 둘리부터 도우너, 희동이, 또치가 매달려있다. /둘리나라

추억의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가 40주년을 맞은 가운데, 만화 속에서 둘리와 친구들을 거둬준 캐릭터인 고길동의 편지가 공개됐다.

영화 배급사 워터홀 컴퍼니는 23일 공식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길동이 쓴 장문의 편지를 공개했다. 고길동은 편지에서 “오랜만이란 말조차 무색할 만큼 세월이 흘렀다. 우리 어린이들, 모두 그동안 잘 있으셨냐”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아기공룡 둘리’에서 동명의 역할 고길동을 연기한지 40년이 됐다고 한다. 그 오랜 시간을 일일이 세지는 않았으나 시간은 공평하게 제 어깨 위에 내려 앉았다”고 했다.

특히 고길동은 “그런데 이제 다들 제 역할을 이해한다더라. 제가 악역이 아니라 진정한 성인이었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라며 “반가운 웃음과 세월의 섭섭함이 교차한다”고 했다.

'아기공룡 둘리' 40주년을 맞아 공개된 고길동 편지./인스타그램

고길동은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이해해 나가는 것, 내가 그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그 모든 거절과 후회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음을 아는 것”이라며 “나이가 들어가며 얻는 혜안은 거부하기엔 값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고 행여 둘리와 친구들을 나쁘게 보지는 말아달라. 그 녀석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제 인생의 가장 멋진 하이라이트로 남겨져 있다”고 부탁했다.

고길동은 “지난 봄, 한국의 워터폴인가 어딘가 하는 회사에서 ‘얼음별 대모험’을 재개봉하게 됐다며 한 마디 요청하길래 ‘이제는 우리 사이의 오해를 풀고 싶다’고 관객을 향한 제 작은 바람을 적어 보냈다”며 “알고보니 우리는 더 풀 오해가 없더라. 이제는 이해하는 사이가 된 우리, 다들 어떠신지. 살아보니 거울 속에 제 표정, 제 얼굴이 비치는지”라고 했다.

이어 “2023년, 한국에선 많은 분들이 90년대의 향수와 문화를 추억한다고 들었다. 지난 날 누군가를, 어느 장소를, 그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축복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추억하는 모두의 모습을 축복하고, 추억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다시 마주하고 싶어하는, 여전히 앳된 당신의 모습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꼰대 같지만 한 마디 남긴다. ‘한 때를 추억하는 바로 지금이 내 미래의 가장 그리운 과거가 된다’는 것을”이라며 편지를 끝냈다.

고길동은 추신을 통해 둘리에게도 인사를 남겼다. 그는 “둘리야 네가 이제 마흔이라니, 철 좀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철들지 말 거라. 네 모습 그대로 그립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건강해라. 그리고 오래오래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가 주렴”이라고 썼다.

편지를 본 네티즌들은 “어른이 돼서 본 고길동의 편지 참 눈물난다” “고길동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편지를 보니 난 아직 저런 어른이 되진 못했나보다” “따뜻하고 눈물나는 편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포스터

고길동의 편지는 영화 ‘아기공룡 둘리 : 얼음별 대모험 리마스터링’ 개봉을 앞두고 공개됐다. 이는 1996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둘리 탄생 40주년을 맞아 24일 재개봉한다.

작중 고길동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이른바 ‘만년 과장’이다. 2명의 자녀를 키우던 고길동은 어린 조카 희동이를 맡아 키우다 둘리와 친구들까지 거두게 된 대가족의 가장이다. 만화영화 방영 당시인 1980~1990년대 고길동은 둘리와 친구들에게 심술맞게 행동하는 ‘악역’으로 묘사됐으나, 둘리를 보고 자란 세대가 어른이 되자 시청자들은 객식구를 군말 없이 거둬준 고길동을 재평가했다.

이와 관련 작가 김수정은 최근 CBS 라디오를 통해 “둘리의 이야기는 똑같은데 보는 시선들, 내가 아이냐 청년이냐 어른이냐에 따라 감정 이입이 달라지는 것 같다”며 “그 시선이 어릴 때는 둘리에 전폭적으로 지지를 했다가 어른이 되니까 길동씨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이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