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영 작가가 세필로 정교하게 그린 닥스훈트 그림을 들어보였다. 개 그림만 그리는 조씨는 “강아지 그림은 내 분신”이라고 했다. /장련성 기자

화가 조은영(53)은 1970~1980년대 TV에서 만화 ‘플란다스의 개’를 보고 펑펑 울었다. 화가를 꿈꾸는 소년 네로가 유기견 파트라슈와 단짝 친구가 돼 모든 것을 공유하는 이야기. 가난과 편견 때문에 네로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둘은 한겨울에 얼어 죽는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이에게 너무 잔혹한 스토리였어요. 그 나이에 이해하기엔 어렵고 충격적이었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을 그때 처음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그 뒤로 자화상을 그리거나, 기쁜 날 축하할 때 강아지를 그렸다. 한때 민화에 빠져서 궁중모란도에 한류스타 얼굴을 콜라주하는 연작도 선보였지만, 10년 전부터는 오로지 개 그림만 그린다. 비글·웰시 코기·닥스 훈트·세인트 버나드 등 그동안 그린 견종만 60종. 두 개의 상반된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중앙에 커다란 호박을 배치하고 그 앞에 강아지가 정면을 바라보는 형식의 채색화, 다른 하나는 세필(細筆)로 정교하게 그리는 무채색 단독 그림 형식이다. 조씨는 “처음엔 다 무채색이었다가, 화사한 색감에 풍성한 호박을 넣는 채색화를 나중에 그리기 시작했다”며 “우리가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듯이 둥글고 풍요로운 호박을 그리면서 저 자신에게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이라고 했다.

조은영 작가가 둥근 호박과 함께 그린 강아지 그림 옆에 앉아있다. /장련성 기자

서울예고 재학 중 유학을 떠났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RISD), 영국 런던 첼시 예술대학원과 슬레이드 예술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비로소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쌍용그룹 창업주인 성곡 김성곤의 외손녀이자, 김인숙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의 막내딸이다. 성곡미술관장을 지낸 김 이사장은 사회학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금속공예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조씨의 개인전 ‘Woof! Woof! 멍! 멍!’ 전시회가 서울 용산 이태원 몬드리안 호텔 지하 1층 아크앤갤러리에서 26일 개막해 6월 6일까지 열린다. 백과사전에서 견종의 역사와 장단점을 찾아 익히고, 유튜브에서 이미지를 찾아 개성을 부각해 그렸다. 조씨는 “내 모든 강아지 그림은 모두 나의 자화상”이라며 “사람과 반려견의 사랑이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