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학예연구사가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에 걸린 명태를 들고 먹는 시늉을 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연평도는 1960년대까지 조기잡이 최대 어장이었습니다. 4~6월 조기잡이 철이 되면 파시(波市)라는 생선 시장이 열려요. 선원만 2만 명이 들어와서 엄청난 현금이 오갔죠. 연평도 ‘니나니타령’ 가사 중에 ‘화장실에 종이가 없으면 돈으로 닦았다. 잘 때 돈주머니를 베고 잤다’는 대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어시장이 아니라 박물관 전시장이다. 그런데도 명태 수십 마리가 걸려 있고, 조기 떼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목청 높여 전시 해설을 하고 있는 이 남자는 김창일(50) 학예연구사. 서울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조명치’ 특별전이 화제를 모으면서 하루에도 3~4차례 전시장 투어를 진행 중이다. 조기·명태·멸치로 본 밥상과 바다 문화 변천사를 오감으로 생생하게 풀어낸 전시다. 그는 “한국인의 삶의 터전에서 ‘조명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려고 땀 냄새, 비린내 가득한 생업 현장을 전시 공간으로 구성했다”며 “평택·경주·제주 등 지자체 문화예술팀이나 해양 관계자들이 매일 단체로 찾아와서 열심히 설명을 해드리고 있다. 몸은 축나도 반응이 뜨거워 기운이 난다”며 웃었다.

김창일 학예연구사가 국립민속박물관 '조명치' 특별전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련성 기자

박물관에선 ‘용왕님’으로 통한다. 연평도, 울산, 삼척, 남해에서 1년씩 상주하며 주민들과 물고기를 함께 잡았고, 부산 영도와 가덕도, 강화도 포구 등 전국 곳곳의 해양 문화를 탐사하며 8년간 현장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1위가 우리나라인데도 지금까지 물고기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전시장은 수산시장 같은 활기로 시끌벅적하다. 강원 용대리 황태 덕장을 재현했고, 물때를 이용한 전통적 어업 방식인 죽방렴도 보여준다. 1940년대 촬영한 명태 관련 영상도 처음 찾아 공개했다. 명태의 알인 명란은 부산에서 태어난 가와하라 도시오(1913~1980)가 일본 패망 이후 후쿠오카로 건너가 상품화해 일본에 널리 퍼졌다는 게 통설이었다. 김씨는 “영상을 보면 그 이전부터 일본에서 명란을 많이 수입해갔고, 일본인들이 이미 그 맛을 알고 있었다”며 “민속학계나 음식사(史)에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김창일 학예연구사가 국립민속박물관 '조명치' 전시장에 나온 그물을 보여주고 있다. /장련성 기자

“연평바다에 어얼싸 돈바람이 분다”(군밤타령)고 노래할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던 연평 파시는 1968년 5월을 마지막으로 더는 열리지 않는다. 그는 “바다 환경이 변해 명태는 사라지고, 조기는 더 이상 서해로 북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명태는 100% 외국에서 들여오고, 조기 역시 맛과 모양새가 비슷한 생선을 아프리카에서 수입한다. 김 학예사는 “지금은 조명치가 가득하던 바다를 그리워하는 실정”이라며 “해양 생태계의 변화가 곧 우리 밥상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걸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시는 8월 1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