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2)의 한 해는 10월 첫 번째 수요일에 시작된다. 매년 새 책을 출간하는 날이다. 작가는 첫 소설 ‘개미’로 크게 이름을 알린 1991년부터 이맘때 신간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켜왔다. “한 방 터뜨리는 게 아니라,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리에 사는 작가를 최근 서면으로 만났다. 그는 “생일인 9월 18일이 되면 보통 신간이 내 손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책의 출간일을 직관적으로 기억하기 쉬워서 10월 첫 번째 수요일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세상이 갈수록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기 쉽지만, 기대 수명을 비롯해 객관적으로는 그 반대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미래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우리의 삶이 부모 세대의 삶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장니콜라 르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세상이 갈수록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간다는 느낌을 받기 쉽지만, 기대 수명을 비롯해 객관적으로는 그 반대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미래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우리의 삶이 부모 세대의 삶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장니콜라 르샤

베르베르는 전 세계, 특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다. ‘개미’ ‘타나토노트’ ‘뇌’ ‘신’을 비롯한 책들이 35개 언어로 번역돼 3000만부 이상 팔렸다. 국내에 56권이 번역 출간됐고, 판매량을 합치면 약 1300만부에 이른다. 이런 수식어보다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체성은 ‘개미’처럼 성실하게 글을 썼다는 것. “천재라는 말을 들으면 기쁘지만, 무엇보다 ‘규칙적이다’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규칙성과 끈기, 이 두 가지를 잘만 훈련한다면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40년 넘게 ‘매일 하루 열 장 쓰기’라는 규칙을 지켜 왔다.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 30분, 그리고 오후 6시부터 7시. 아이디어가 많더라도 이 분량과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아쉬움은 다음 날 더 열심히 글을 쓰는 동력이 된다”고 여긴다. 그의 대표작 ‘개미’ 역시 이런 일상 끝에 탄생했다. 시작은 여덟 살 때 학교 작문 과제로 쓴 ‘벼룩의 추억’이란 글이다. 거기에 하루 종일 개미를 관찰했던 유년 시절, 시사 주간지 과학 기자로서의 경험 등을 더했다. 20여 년간 120번 가까이 개작을 거쳤다고 한다.

매년 신간을 내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묻는 질문에, 작가는 “나에게 책을 매년 한 권씩 내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답했다. “내 뇌가 기능하는 한 그 잠재력을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는 데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 삶의 끝에 다다라 결국 충분히 많은 세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는 않다.” 물론 그에게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불안하다. 작가는 “솔직히 말하자면, 신간을 낼 때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지 확신하지 못한다”며 “독자들과 만날 순간을 떠올림으로써 불안감을 극복한다”고 했다.

소년 베르베르의 불안을 잠재워준 것도 글쓰기였다.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정보를 잘 암기하지 못해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 대신, 없는 세계를 상상하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홉 살엔 관절이 서서히 굳는 ‘강직 척추염’에 걸렸다. 통증이 심해지면 지팡이를 짚고 다닐 정도였다. 이른 나이부터 죽음과 병에 대해 고민하게 된 이유다. 작가는 “모자란 기억을 상상력으로 대체하려 했던 것 같다”며 “상상은 오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작가는 죽음, 우주, 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상상력을 키운 비결로 ‘꿈’을 골랐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지난밤 꿈의 내용부터 기록한다. 꿈이야말로 수많은 날것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글의 보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상상의 과정을 즐긴다고 했다. “차기작은 유전학에 관한 이야기라 관련 조사를 따로 해야 했는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내가 얻은 정보들을 재료로 누구나 재밌게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다만 예전만큼 참신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작가는 “체스, 개미 등 이미 한번 사용한 소재를 다시 가져와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가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종의 이스터에그(제작자가 작품에 숨겨 놓은 메시지)로 기능할 수 있다”고 했다.

작가는 신작 장편 ‘꿀벌의 예언’(열린책들)과 에세이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열린책들) 국내 출간을 맞아, 이달 말 방한할 예정이다. 아홉 번째 방한이다. 한국에서 크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묻자, “한국인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새로운 것에 매우 열려 있다. 전통이 악습이 되는 나라가 많은 반면, 한국은 반성하고 쇄신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여행 때는 글쓰기 루틴을 지킬 수 없어 조금 아쉽지만, 한국을 찾는 일은 늘 보람차다. 내 글에 관한 이야기를 어서 들려주고 싶다.”

◇베르베르가 말하는 ‘글쓰기의 비법’

나의 인생을 바꾼 작가

‘듄’ 시리즈를 쓴 프랭크 허버트,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유빅’의 필립 K. 딕을 스승으로 생각한다. 그중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필립 K. 딕이다. 딕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현실이란 무엇인가?’처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을 했다. 매일 저녁 한 시간씩 놀라운 결말을 가진 짧은 글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이기도 하다.

‘글쓰기의 템포’를 다루는 비법

글쓰기는 ‘작곡’처럼 템포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다. 템포를 잘 다루려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내 글을 지속적으로 돌아보고 개선할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요즘 ‘KMD’라는 미국 힙합 트리오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즐겨 듣는 음악의 장르를 자주 바꾸는 편인데, 이는 새로운 영감을 찾고 새로운 세계관을 설계하는 데 많은 힌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