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요즘으로 치면 발달장애였어요. 매일 같은 곳에 가는 직장 생활도, 전업주부도 못 하겠구나 하는 마음에 작가가 되기로 했습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눈에 보이는 사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마음에 담아 둔다”며 “보이지 않는 세계와 마음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이 살아가는 데 더 중요하다”고 했다. /ⓒFumiya Sawa

이런 생각에 다섯 살 때부터 글쓰기 연습을 시작했다니 남들과 다르긴 달랐다. 문학평론가 아버지 영향도 받았다. 23살 때 대학 졸업작품으로 데뷔했고, 이듬해에 쓴 ‘키친’(1988)이 세계 30여 국에서 250만부 넘게 팔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 본명은 마호코(眞秀子). 어떻게 발음하는지 학교 선생님도 모를 정도로 특이한 이름이었다. 바나나를 필명으로 삼은 건 쉬운 이름을 갖고 싶었기 때문. 일본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이자 한국에서도 사랑받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59) 이야기다.

‘치유’ ‘구원’으로 나아가는 섬세하고 힘 있는 이야기를 써내는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양대 인기 작가로 꼽혔다. ‘바나나 현상’ 이라는 유행어가 생겼을 정도다. 한국엔 34종 책이 번역돼 지금까지 100만부를 찍었다. 지금도 꾸준히 팔린다. 올해는 새 에세이집이 나올 예정이다. ‘저마다의 시절에 당신 책에서 위안을 얻었던 한국 독자들이 반가워할 것’이라는 인터뷰 요청에 그는 “한국과 연결될 수 있어 기쁘다”며 흔쾌히 응했다. 답변이 그의 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 것처럼 친숙했다.

바나나의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분위기가 있다. 자연의 충만한 힘이나 장소나 물건에 깃든 온기, 고인이 남긴 사랑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장 전면에 그려진다. 인물들이 이 힘과 작용하며 치유되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읽은 후엔 줄거리보다도 “빛과 꽃이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길”(‘꿈꾸는 하와이’)이나, “이렇게 밝고 따스한 장소에서, 서로 마주하고 뜨겁고 맛있는 차를 마셨다는 기억의 빛나는 인상”(‘만월’) 같은 장면이 남는다.

이에 대해 바나나는 “내 소설은 큰 사건이나 줄거리가 없어 읽어도 금방 잊어버린다”며 “작가인 저 자신도 세세한 부분은 잊어버려요. 꿈에 나오는 집이나 장소를 금방 잊어버리는 것처럼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설 속 장면들은 마음에 깊이 남는다. 바나나는 “그게 제가 집중하고 싶은 부분”이라며, 자신이 지향하는 글쓰기를 ‘온천’에 비유했다. “제 소설의 ‘공기’ 속에 있을 때 독자들이 마치 온천에 들어간 것처럼 모든 것을 잊고 마음속 응어리를 ‘마사지’받는 듯한 느낌을 받길 바라며 씁니다. 읽다 보면 뭉친 부분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 어릴 적부터 훈련을 해왔는데, 이제야 겨우 조금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바나나만의 분위기를 사랑하는 팬이 많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진 않았을까. 그는 “사람이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제 스타일에 깊이를 더해가면서 계속 써 나갈 생각”이라고 답했다.

그는 집 거실에서 개와 고양이에게 둘러싸여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작업한다. 아침에 30분은 무조건 쓰고, 그날의 컨디션이나 일정에 따라 오후나 심야에 집필할 시간을 정한다고 했다. 책 한 권을 쓰는 데 준비와 자료 수집을 포함해 1년 정도 걸린다. 그는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아이나 동물을 더 많이 키웠을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그런 선택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가로서만 살아왔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것, 숨을 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20대에 데뷔해 어느새 60대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동안 인터뷰를 하거나 사람들 앞에 나선 일은 많지 않다. “그런 일이 정말 안 맞는다”고 했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취업’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심사위원이 된다든가 대학에서 가르치거나 어떤 단체의 이사가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는 소설 쓰는 일밖에 못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8년 먼저 데뷔한 하루키도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가 먼저 글쓰기에만 집중하며 사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제가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쓸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바나나의 소설 중엔 ‘언어란 언제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모두 지워버린다’는 문장이 있다. 그에게 ‘좋은 소설’이란 뭘까. “그 사람만의 언어로 쓰인 것”이라고 답했다. “사람은 항상 외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완전히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시 그 사람만의 어조나 단어 선택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제 문체가 어떤 부분이든 전달되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사랑하는 것

가장 좋아하는 작품 ‘막다른 골목의 추억’

내 작품 중 ‘막다른 골목의 추억’을 가장 좋아한다. 임신 중에 썼기 때문에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들이 태어난 후와 태어나기 전의 삶이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작품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다섯 여성의 이야기가 담겼다. ‘아이가 생기면 두려워서 못 쓰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무거운 주제만 다루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진심으로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친구, 가족과 맛집 찾아다니는 게 좋다

내 소설 속엔 하와이와 발리 등 여행지가 종종 배경으로 등장해 여행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사실 여행은 짐 싸는 것이 귀찮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대신 맛집이나 이자카야(일본식 주점)를 좋아해 친구나 동료, 가족들과 함께 그런 가게를 찾아다닌다. 여행지에서 뭔가 먹으러 가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규슈 지역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싸게 먹을 수 있어 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