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4750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라는 소설을 읽어보았다. 지난 3월 출간 후 70일 만에 10만 부를 판매했다고 하고 요즘도 종합 베스트셀러 10위 이내에 올라 있다. 무엇보다 영미권 최대 출판그룹 펭귄랜덤하우스와 10만 달러(약 1억 3000만 원) 선인세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니 어떤 소설인지 궁금했다.

소설은 주인공 ‘지은’이 ‘메리골드’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마음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마음 속 얼룩을 지울 수 있는 마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옷에서 얼룩을 빼듯 마음 세탁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잊게 만들 수 있는 능력자다. 소설 등장인물들이 아픈 기억을 잊으면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처럼 상당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 같다. 읽고나서 이런 소설을 뭐라 불러야하나 생각했는데 ‘힐링 판타지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소설 제목에도 나오는 메리골드(marigold)는 팬지, 페튜니아, 베고니아, 제라늄 등과 함께 도심을 장식하는 길거리꽃 중 하나다. 꽃 이름에 익숙치 않은 사람도 메리골드 사진을 보면 “아 이게 그 꽃이야?”라고 할 정도로 길거리에 흔한 꽃이다. 메리골드는 노란색 또는 황금색 잔물결 무늬 꽃잎이 겹겹이 펼쳐진 모양의 꽃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고 독특한 향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길거리 화단에 핀 메리골드.

왜 메리골드일까 궁금했는데 메리골드가 주인공의 ‘엄마가 좋아하던 꽃 이름과 같은 이름의 도시’여서 고른 동네라는 대목이 있다. 주인공이 환생을 거듭하며 사랑하는 가족을 찾아 헤매는 것이 소설 뼈대 중 하나인데 주인공이 방황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오늘을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날, 메리골드가 선명하게 등장하고 있다.

<순간, 주변을 동그랗게 맴돌고 있던 꽃잎들이 빠르게 회전하며 주황색으로 변색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심장에 포갠 손을 하나씩 천천히 떼어낸다. 흔들리던 꽃잎들이 삽시간에 심장으로 빨려들어온다. 마지막 꽃잎 하나를 손에 쥐고 자세히 살펴본다. 메리골드다. 이 도시와 같은 이름의 꽃이다. 양손으로 조심히 꽃잎을 쥐고 꽃말을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무엇이 행복이지...?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나는 지나간 날들에 대한 후회를 멈추고 싶어. 생의 방랑과 방황을 멈추고 오늘을 살아가고 싶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싶어. 할 수만 있다면...”>

소설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메리골드 꽃말을 중요한 포인트로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메리골드는 다른 원예종처럼 다양한 색과 종류의 꽃이 있다. 한 꽃송이에 주황색과 노랑색이 함께 나타나는 프렌치메리골드는 만수국, 주황색 또는 노랑색만으로 피는 아프리칸메리골드는 천수국이라고도 부른다. 일반적으로 천수국이 만수국보다 꽃이 크다. 둘 다 그냥 메리골드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메리골드. 이렇게 한 꽃송이에 주황색과 노란색이 함께 나타나는 것을 따로 프렌치메리골드(만수국)라고 부르기도 한다.

필자는 메리골드 하면 발리가 떠오른다. 발리 어디를 가나 메리골드를 볼 수 있었다. 우선 발리 사람들이 신에게 바치는 ‘차낭사리(Canang sari)’에 메리골드가 빠지지 않았다. 차낭사리는 힌두교를 믿는 발리인들이 신에게 바치는 예물이다. 코코넛 잎을 길게 잘라 접시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다양한 빛깔의 꽃과 음식을 조금씩 담은 것이다. 차낭사리는 집이나 거리, 가게 등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차낭사리만 아니라 가게, 거리를 장식하는데도 메리골드를 많이 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 쓰이니 메리골드를 재배하는 밭이 곳곳에 있었고 시장에서 큰 봉지에 담아 팔았다. 발리 여인들이 아침마다 메리골드가 든 차낭사리를 집 안팎에 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발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낭사리(Canang sari). 신에게 바치는 예물이다.
메리골드 등 꽃을 팔고 있는 발리 우붓 시장.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를 읽을 때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편안한 문장은 괜찮았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발리의 아침에 차낭사리를 만난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좀 당혹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이 소설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같은 이야기 구조가 뚜렷하지 않다. 그냥 마음 세탁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연과 그들의 마음 얼룩을 지우는 에피소드들이 차례로 나오는 구조다. 이 소설이 국내에서 대박이 나고 영미권 출판사에서 거액을 주고 선인세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니 시대 흐름이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장점을 취했다고 ‘업마켓 소설(Upmarket Fiction)’이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보았다.

장르문학, 순문학 같은 이분법적인 구분은 독자들에게 더이상 큰 의미가 없다는데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재미와 소설의 깊이까지 의미없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비슷한 힐링 소설인 ‘불편한 편의점’을 읽을 때와는 또 달랐다. 이런 느낌은 힐링 소설이나 에세이에 흥미를 덜 느끼는 내 취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민철의 꽃이야기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4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