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에는 배우 스칼릿 조핸슨의 맨몸이 나온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는 R등급(17세 미만 관람 제한)을 받았다가 ‘성적인 누드’가 아니라는 항의에 이례적으로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지난해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중국계 배우 스테파니 수는 최근 개봉한 영화 ‘조이 라이드’에서 은밀한 부위에 문신을 새긴 발칙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에선 춤을 추다가 치마가 벗겨지며 문신이 드러나는 장면이 익살스럽게 그려진다. 지저분한 성적 농담이 난무하는 B급 코미디이긴 하나, 아시아 여성은 조신하고 순종적이라는 편견을 깨부수며 영화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평론가 지수 91%로 호평을 받았다. 아델 림 감독은 “여성의 몸도 코믹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누드신이 다시 돌아왔다. 스칼릿 조핸슨, 제니퍼 로런스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도 줄줄이 노출 있는 영화를 선택했다. 이들이 선택한 영화는 관능적인 몸매를 강조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몸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엔 스칼릿 조핸슨의 누드신이 나온다. 극 중에서도 배우인 조핸슨이 욕실에서 대사 연습을 하다가 두르고 있던 수건이 떨어지면서 맨몸이 드러난다. 얼굴은 잘린 채 전신 거울에 비친 나체는 조각상이나 누드화처럼 보인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는 R등급(17세 미만 관람 제한)을 받았다가, 웨스 앤더슨 감독이 항의하면서 이례적으로 PG-13(13세 미만 관람 제한) 등급으로 하향 조정됐다. R등급의 기준인 “성적인 누드”가 아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제니퍼 로런스도 최근 코미디 영화 ‘노 하드 필링스’(국내 개봉 미정)에서 자신의 옷을 훔쳐간 10대들과 홀딱 벗고 싸우는 격투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로런스는 노출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며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한테 그 장면은 굉장히 웃기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작 환경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2017년 미투 운동 이후 할리우드에선 노출이 있는 장면이나 베드신을 찍을 때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를 도입했다. 배우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배우와 제작진 사이에서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새로운 직업이다.

영화 ‘조이 라이드’에서 할리우드 진출을 앞둔 배우 ‘캣’(스테퍼니 수·왼쪽에서 셋째)은 은밀한 부위의 문신이 드러나면서 곤란을 겪는다. /판씨네마

일본에서도 2020년 이를 도입해 현재 2명이 활동 중이다. 그중 한 명인 니시야마 모모코씨는 “3년 전 배우들이 먼저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도입해달라고 제안했고, 지난해 영화계 성폭력이 이슈가 되면서 수요가 더 늘었다”면서 “성적 묘사가 불가결한 작품도 있기 때문에, 시청자가 불쾌함을 느끼거나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OTT를 중심으로 자극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느닷없는 노출에 눈살을 찌푸리는 시청자들도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선 주인공 김모미(나나)가 교도소에 들어가며 옷을 모두 벗은 채 신체검사를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공개 이후 “꼭 필요한 장면이었는지 모르겠다” ”화제성을 위해 끼워 넣은 것 같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해외에서도 영화 ‘돈 룩 업’ 촬영 당시 메릴 스트리프의 노출에 대해 함께 출연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꼭 필요한 장면이냐”며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애덤 매케이 감독은 “정작 스트리프는 아무렇지도 않게 촬영을 소화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국내에서는 미투 운동 이후 촬영 시작 전에 제작진이 성폭력 예방 교육을 듣는 사례가 유의미하게 늘었지만, 성적인 장면을 촬영할 때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태다. 이은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사무국장은 “작품에 성적인 장면이 포함된 경우 제작사에서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조율이나 조언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