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첫 바깥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 일기도 메모 수준이지만 쓰기로 했다. 워밍업이다. 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2011년 1월 20일)

소설가 박완서(1931~2011)는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영원한 현역 작가’를 꿈꿨던 그는 담낭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쓴 일기는 11권. “반성을 위해서도 기억을 위해서도”(2008년 6월 10일) 썼던 일기에는 데뷔작 ‘나목’(1970)을 비롯해 자전적 이야기를 자주 그렸던 박완서의 진솔한 내면이 담겨 있다.

'박완서 아카이브'에 전시될 소설가 박완서의 일기 11권. 서울대총동창회 등에서 받은 다이어리다. /서울대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일기·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500여 통을 포함해, 박완서가 지냈던 구리시 아치울 노란집 서재가 서울대 중앙도서관 ‘박완서 아카이브’로 재현된다. 19일 오후 4시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마루에서 협약식이 열리고, 아카이브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완공될 예정이다. 서울대 구성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박완서 아카이브는 서울대 도서관에 생기는 첫 아카이브다. 서울대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대 도서관 대출 기록을 분석해 박완서를 선정했다. 서울대 학생들의 도서 대출 패턴을 분석한 결과, 다양성 지수(이용자의 소속 단과대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측정한 수치)에서 문학 분야가 가장 높았고, 서울대 출신 문학 분야 작가 중 박완서의 책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박완서는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6·25가 터지면서 학교를 중퇴했었다. 그는 2006년 서울대에서 명예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명예 박사 학위를 받은 첫 문화 예술인이면서 첫 여성이었다.

아카이브는 중앙도서관 2층에 25~30평 규모로 마련될 예정이다. 책 3만여 권 중에서 박완서가 아꼈던 책을 중심으로 3000여 권을 추릴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포함된 책에는 ‘보관하라’는 뜻에서 ‘보(保)’ 자를 써뒀다. 책상, 의자, 서랍장 등 물건과 박완서와 그의 맏딸인 호원숙 작가가 함께 만든 뜨개 담요 등이 전시된다. 1953년 중국요리집인 소공동 아서원에서 박완서가 결혼할 당시 촬영한 흑백 무성 영상도 재생한다.

호 작가는 “서울대 도서관이 어머니의 서재와 육필 자료나 유품들을 잘 보관할 뿐만 아니라 작가 연구에 지속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기증을 결정했다”라며 “(일기를 보면) 말년의 일상을 쓴 글씨가 방금 쓰신 것 같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했다. 아카이브로 제작될 서재는 1998년 박완서가 아치울에 이사 오며 만든 것이다. 그는 1985년 방이동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서재가 없어, 작은 상을 놓고 글을 썼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재에 꽂힌 책이나 소품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카이브를 통해 (박완서의) 작가로서의 삶, 가족 안에서의 삶, 문인이며 공인으로서 삶을 면면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