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주인공은 행패를 부리는 불한당에게 맞서지 않은 자신의 우상에게 실망한다. “맞서 싸웠어야죠!”(루피) “주먹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아. 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해.”(샹크스)

넷플릭스 드라마 '원피스'의 한 장면. 숨겨진 보물 '원피스'를 찾아 바다를 항해하는 루피(가운데)와 동료들의 모험기다. 아래는 원작 만화 '원피스'. /넷플릭스

만화의 뜨거운 인기는 물론 2000년대 국내 지상파방송에서도 방영됐던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실사화한 넷플릭스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국내에서 유독 미지근하다. 지난달 31일 공개 이후 세계 넷플릭스 TV 부문(영어) 시청 순위에서 2주 연속 1위, 74국에서 1위에 오르며 다음 시즌 제작까지 확정 지은 상황. 하지만 국내에선 공개 직후 6위에서 시작해 현재 9위까지 떨어졌다. 세계적으로 5억부 이상 팔린 만화 원피스는 자신과 동료의 꿈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 희생하는 ‘해적’ 루피와 동료들의 모험기다. ‘자기 과잉’ 상태로 주변인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다른 해적들과 달리 루피는 동료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꿈에 가까워진다. 구성원의 열정과 꿈을 찾아주는 ‘좋은 리더’에 대한 메시지는 그저 만화라고 무시하기 어려운 울림이 있었다.

/도에이 애니메이션

드라마가 던지는 주제도 다르지 않다. 원작자가 제작에 참여해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왜 보는 내내 옛날 ‘추억 속 루피’가 그리울까. 국내 시청 후기들을 보면 완성도 있는 원작의 ‘복제’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럽다는 평이 다수다. 일부 원작 팬은 ‘분장쇼’ ‘코스프레쇼’로까지 깎아내리기도 했다. 드라마를 끄고 ‘탈주’하게 만들었다는 요인으로 꼽히는 게 이질감이다. 원작자의 의견에 따라 배역들이 아시아부터 유럽, 남미까지 다국적으로 캐스팅됐다. 해외에선 장점으로 꼽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선 멕시코 배우가 연기한 루피의 곱슬머리와 진한 웃음에 익숙해지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여성 캐릭터인 나미 역시 원작의 매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원성이 크다. 한 회당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만화적 상상력과 스케일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인 전투 장면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등장인물의 검집이 전투 중 ‘종이 빨대’처럼 구겨지는 장면이 많이 오르내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외양만 흉내 낸 ‘분장쇼’로 비치는 이유는 차곡차곡 쌓여야 할 인물들의 깊이가 걷혔기 때문이다. 공개된 시즌1 총 8부작에는 현재 1000회 넘게 연재 중인 원작 만화의 95화 분량, 애니메이션으로는 68화 분량이 담겼다. 제한된 분량에 줄거리를 압축해 담느라 루피가 동료들의 마음을 얻어가는 과정과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얄팍해졌다. 원래의 원피스를 알던 팬들에게 실사가 ‘코스프레’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에겐 충분히 즐길 만한 드라마라는 평이 많다. 원피스를 처음 접한 시청자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지장이 없다. 해외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 전문가 추천율도 86%로 높은 편. 기존 팬만이 아닌 전 세계 모든 시청자를 겨냥한 작품에 가깝다. 원작을 좋아했던 이들은 조금 아쉽다. 오랜만에 만나는 원피스에서 추억보다 더 멋진, 원작 이상으로 생동감이 부여된 루피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원피스의 저주’를 걱정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1997년 연재를 시작한 원작은 20년 넘게 완결이 안 난 상황. 드라마 제작진이 실사 원피스를 12시즌까지 제작하길 희망한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팬들은 과연 실사 완결은 볼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