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리에이터'에서 인류를 위협할 강력한 무기로 만들어진 AI 로봇 '알피'.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귀여움’은 생각보다 강력한 무기입니다. 아기나 동물의 새끼가 귀여운 것도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죠. 판다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귀여운 외모 덕분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훨씬 지능이 뛰어난 AI가 귀여움을 무기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영화 ‘크리에이터’(10/3 개봉)는 인류를 위협할 무기를 찾아 나선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가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AI 로봇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까까머리에 통통한 볼, 커다란 눈망울로 TV를 보며 합장으로 전원을 껐다 켰다 하는 로봇 ‘알피’는 첫 등장부터 충격적으로 귀여웠습니다. 일단 이 아이가 비밀 무기라니 총구를 들이대지만 당혹스러워하는 조슈아에 100% 공감할 수밖에 없었죠. ‘어휴, 저렇게 귀여운 걸 어떻게 죽여....’

영화 '크리에이터'에서 전직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AI 로봇 알피를 만나고 갈등에 빠진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 영화는 AI와 인간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한 꺼풀 벗기면 ‘AI와 싸우는 서양’과 ‘AI와 공존하는 동양’의 대립을 그립니다. 동양을 이상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살짝 나긴 하죠.

어쨌든 영화 속 가상의 국가 ‘뉴 아시아’는 굉장히 특이한 공간입니다. 승려 복장을 한 로봇이 돌아다니고, 산속의 사원 역시 최첨단 기술로 지어졌죠. 태국, 네팔 등에서 촬영한 고즈넉한 자연과 미래 로봇의 결합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영화가 아니라면 볼 수 없을 생경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건 많은 이들이 SF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죠.

영화 '크리에이터' 속 승려 복장을 한 로봇.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음악 얘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기암절벽 위로 흐르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과거와 미래가 섞인 듯한 영화의 독특한 배경에 탁월한 선곡이었고, 고요하면서 장엄한 음악들 역시 하나같이 뉴 아시아의 풍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도대체 음악 감독이 누굴까 엔딩 크레딧을 기다렸습니다. 영화 음악의 거장이라 불리는 한스 짐머의 이름을 발견하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영화를 보시면 나도 모르는 새 AI를 응원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되실 겁니다.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짧은 다리로 종종 뛰어다니는 알피를 보면 “힘내라 AI”를 외칠 수밖에 없게 되죠.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기술을 찬양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보단 쉽게 타인을 증오하고 적으로 몰아가는 현실 사회에 대한 은유에 가깝습니다.

영화 '크리에이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좋은 SF 영화는 미래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현실에 필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할리우드 못지않다며 기술만 자랑하는 한국 SF 영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터’는 도대체 ‘인간적’이라는 게 무엇인지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설계자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프로그래밍한 로봇 알피는 위험에 처한 순간에도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결국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우려는 측은지심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다움’의 본질이 아닐까요.

오늘은 연휴의 끝자락에 개봉하긴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기에 좋은 SF 영화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저는 ‘그 영화 어때’로 처음 인사드리게 된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였습니다. 모쪼록 서로를 보듬는 넉넉한 추석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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