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음원 사이트에선 웬만한 아이돌도 임영웅을 못 당한다’. 지난 9일 가수 임영웅의 신곡 ‘두 오어 다이’가 발매 직후 멜론 톱100 차트 1위를 하자 나온 반응이다. 당시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있던 방탄소년단(BTS) 정국을 제치고 오른 정상이었다. 임영웅은 지난해 멜론 ‘최애(가장 좋아하는) 수록곡 대전’ 투표에서도 BTS를 41만 표로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열린 '케이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이 단체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선 10대 인구수가 줄면서 40~60대보다 팬덤의‘ '화력'이 작아지는 반면, 해외 10대 팬의 비중은 더 커지고 있다. /뉴스1

원인은 역전된 음원 플랫폼 이용 연령대가 꼽힌다. 지난 6월 한국 문화관광연구원이 분석한 ‘모바일 음악 콘텐츠 이용 시간의 변화’에 따르면 50~59세의 월평균 모바일 기기 음원 서비스 이용 시간은 19억8000만 분이었다. 통상 아이돌 주요 소비층이라 여겨지던 13~18세 이용 시간 10억5000만 분의 2배 수준이었다. 2013년 13~18세는 14억3000만 분, 50~59세는 3억3000만 분의 이용 시간을 보였지만 10년 만에 역전된 것이다. 멜론에 따르면 50대는 임영웅 음악을 가장 많이 듣는 연령대(38%)다.

또한 60~69세는 9억8516만 분, 40~49세는 27억6627만 분의 월평균 이용 시간을 보였다. 19~29세(55억9363만 분)와 30~39세(43억4700만 분) 청년층의 이용 시간에 비하면 아직 적긴 하지만, 영상으로 음악을 자주 듣는 10대 이용자 대다수가 유튜브 뮤직으로 대거 이탈하면서 멜론, 지니 등 국내 토종 음원 플랫폼에서의 중~노년층 영향력은 계속 커져가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이런 역전 현상은 국내 ‘저출생·고령화’와 관계가 깊다. 음원 사이트 순위를 올리기 위한 팬들의 집중 투표 수도 각 세대의 인구 수 차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0대 시절 남진, 나훈아, 조용필의 전성기를 경험했던 ‘오팔세대(Old People with Active Life의 약자로 소비력 높은 5060세대)’와 서태지와 H.O.T를 거치며 팬덤 문화를 익힌 ‘엑스틴(10대 때 X세대로 불린 1970년대생들)’ 세대 출생아 수는 현재 아이돌 팬덤의 10대 출생아 수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실물 음반 소비에서도 중~노년층 팬들은 10대 팬들보다 강한 ‘화력’을 보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년 음악 이용자 실태 조사’에서 2019~2021년 사이 실물 음반 구매 경험은 10대와 60대가 타 연령 대비 높았다. 예스24의 LP 음반 구매 연령대 통계에선 4050 구매율(56%)이 2030 구매율(약 26%)을 상회했다.

1970년대생 팬덤인 ‘엑스틴’은 특히 가요계 ‘대리 소비자’로 꼽힌다. 학부모 세대이면서 오팔세대보다 최신 팬덤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자녀에겐 아이돌 공연 표를, 부모에겐 임영웅 공연 표를 대신 구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0대 초등생 팬이 많기로 유명한 걸그룹 아이브의 최신 미니 1집 실물 음반도 알라딘 사이트에서 40대 여성(39.8%)에 이어 40대 남성(12.8%)에게 가장 많이 팔렸다.

저출산 현상은 국내 음악 기업들의 해외 진출 비중 또한 확대시키고 있다. 줄어드는 국내 10대 팬 공백을 해외 팬들로 채우는 것이다. 국내 동요 최초로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 32위에 오른 ‘아기상어’ 제작사 핑크퐁도 수차례 “국내 출산율이 떨어져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밝혀왔다.

일부 신인 아이돌은 출발부터 해외 팬의 숫자와 활동이 국내 팬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7월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즈 플래닛’으로 데뷔한 제로베이스원은 팬투표 과정에서 해외 팬이 국내 팬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각종 규제와 불안정한 정치 변화 요인에도 계속 중국, 중동 지역이 미래 먹거리 시장으로 거론되는 것도 젊고 돈 많이 쓰는 인구 수 때문”이라고 했다.

가요계 연습생 공급량과 국적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다. SM에서 운영 중인 K팝 전문 양성 학원은 지난 6월 1기 입학생 120명을 뽑았는데 한국인은 36명, 외국인은 84명이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노년층과 청년층의 인구 그래프가 역전 곡선을 그리면서 젊은 국내 연습생 찾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다국적 그룹을 출시하는 기업이 계속 느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