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베를린 필과 협연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내년 이 악단의 상주 음악가로도 활동한다. /빈체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같은 명지휘자들이 이끌었던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다. 그런 명문 악단이 최근 카카오톡에 한국어 채널을 개설했다. 해외 명문 악단이 직접 채널을 개설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채널에서 베를린 필은 의례적인 소식 전달에 머물지 않았다. 악단의 온라인 영상 중계 서비스인 ‘디지털 콘서트홀’의 구독료를 할인해주고 지난 11~1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6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는 관객 초대 행사도 벌였다. 이런 적극적인 마케팅 때문에 ‘혹시 가짜 계정이 아니냐’는 오해도 낳았다. 물론 엄연한 공식 계정이다. 베를린 필의 첫 한국인 종신(終身) 단원인 비올리스트 박경민씨가 “베를린 필 채널을 팔로하면 관련 공연과 뉴스를 접할 수 있다”는 안내 영상도 촬영했다.

베를린 필은 피아니스트 조성진(29)을 내년 상주 음악가(Artist in residence)로 선정한다는 소식도 최근 발표했다. 상주 음악가는 협연과 실내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오케스트라나 공연장의 ‘간판 모델’ 역할을 하는 제도다. 피아니스트 김주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최근 일회성 협연을 넘어서 장기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만큼 한국 음악계가 성장했다”고 평했다.

한국에 대한 베를린 필의 관심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다음 달에는 작곡가 진은숙의 주요 작품들을 담은 음반도 발매할 예정이다. 베를린 필이 생존 작곡가들의 음반을 내는 것 자체가 지극히 이례적이다. 최근 베를린 필의 젊은 음악인 양성 기관인 카라얀 아카데미도 경기도 광주의 곤지암 국제 음악제와 업무 협약을 맺었다. 내년부터 관악 연주자 발굴을 위한 오디션을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이 정도면 한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구애(求愛)’라고 봐도 좋을 법하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우선 세계 무대에서 눈부신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 음악가들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베를린 필의 안드레아 치치만 대표는 지난 10일 간담회에서 “젊고 뛰어난 한국 음악가들의 활약 덕분에 독일과 한국의 문화 교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공식 사유 외에 숨은 이유도 있다. 팬데믹 기간 단원과 스태프까지 100여 명이 이동하는 해외 오케스트라들의 투어도 전면 중단됐다. 이 때문에 재정적 타격이 극심했던 악단들이 최근 순회 공연을 재개하면서 한국에 집결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빈 필하모닉은 거의 매년 한국을 찾고 있고, 베를린 필도 방한 간격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번 베를린 필 내한 공연의 티켓 최고가는 55만원에 이르렀다. 박선희 전 국립 심포니 대표는 “오케스트라 순회 공연은 문화만이 아니라 국제정치와 경제까지 결부된 복합적 현상”이라며 “문화 교류 이면에는 수지 타산에 대한 셈법과 냉철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