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노래를 들으면 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1977년 천경자 화백이 좋아하는 가수로 이미자(82)를 꼽으며 한 말이다. 내년 데뷔 65주년을 맞는 이미자는 ‘엘레지(elegy·애가)의 여왕’답게 슬픈 노래가 많다. 그의 애가를 들으며 6·25 전후 눈물을, 한강의 기적을 위해 흘린 땀을 위로받았다는 경험담도 많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이미자는 “공연 때 신나는 노래가 없어 관객에게 미안하다. 젊은 사람들에겐 느려터지고 재미없을 게 내 노래들”이라면서도 “그러나 때로는 한바탕 펑펑 울고 나야 찾아오는 위안이 있는 건 아닐까”라고 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한국 대중가수 최초로 지난달 받은 금관문화훈장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내년 데뷔 65주년을 맞는 그는"전통 가요의 맥을 잇는 가수로 남고 싶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1965년 사이공(현 호찌민)에서 처음 선 ‘파월 장병’ 위문 공연도 ‘눈물의 위로’를 함께한 순간이었다. 그해 여름 “베트콩이 총을 쏘면 그대로 맞고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현지 무대에 올랐다. 주월 한국군 비둘기 부대원 2000여 명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동백 아가씨’만 일곱 번 앙코르를 받아 불렀어요. 나랑 눈만 마주치면 그렇게 엉엉 우는 거예요. 오죽했으면 제가 ‘위문 온 건데 자꾸 울리니 잘못 온 것 같다’ 했을까. 장병들도 알던 거겠지요. 자신들이 사선에 있다는 걸….” 이후 “그들의 눈빛이 잊히지 않아 5년간 해마다 베트남 위문 공연을 갔다”고 했다. 그때 군인들의 눈물이 ‘한강의 기적’ 밑천이 되었다.

◇‘만민화락’...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써준 휘호

1989년 전통 가요 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 입성했던 ‘데뷔 30주년 공연’은 “가수 인생에서 가장 아프면서도 행복을 안겨준 무대”였다고 했다. 당시 클래식 공연을 주로 열던 세종문화회관이 “이미자가 노래하면 고무신짝들이 온다”며 수차례 대관을 거절했기 때문. “하, 그 말이 아직도 안 잊혀요. ‘동백 아가씨’로 33주간 가요 순위 1위를 했을 때조차 이미자 노래, 전통 가요는 고무신 끌고 대폿집에서 젓가락 두들기며 부르는 노래라는 인식이 가슴 아팠죠. 내 노래를 좋아해도 격 낮아 보일까 봐 팬이라고 하지 못하기도 했고….”

이미자가 2013년 독일 현지 파독 광부 위문 공연에서 입은 드레스. /고운호 기자

이미자가 당시 고건 서울시장을 직접 찾아가고야 공연 허락이 떨어졌고, 공연 전날까지 ‘세종문화회관 성역’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공연 당일 청중은 박준규 민정당 대표·김대중 평민당 총재·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김종필 공화당 총재, 당시 국내 정치를 이끌던 4당 대표가 부부 동반으로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여소야대 정국에 ‘1노(노태우)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경쟁 체제였던 당시 ‘3김’이 한데 모여 격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귀한 장면이었다. “가요와 정치의 합석”이란 호평이 나왔다.

이미자는 “직접 여의도를 돌며 각 당 대표에게 초대장을 전했는데, 당시 공연 주최사인 조선일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대중 총재는 안 올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김대중 총재가 ‘갈등 감정은 없다’고 웃으며 공연 참석 뜻을 담은 휘호 네 글자를 써주셨어요” 네 글자 ‘만민화락(萬民和樂·국민이 화합하고 즐거운 모습이란 뜻)’은 “공연 직후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액자에 다시 담아 줘 지금도 이미자의 방에 걸려 있다.

1989년 이미자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에 모인 당시 여야 4당 대표들. 왼쪽부터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이미자, 박준규 민정당 대표,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조선일보 DB

TV조선 방송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사랑받을 땐 “전통 가요가 세련돼 보일 수 있다는 걸 널리 알려준 게 참 고마웠다”고 했다. 다만 자신을 “‘트로트의 여왕’이라 부르는 건 사양하고 ‘전통 가요를 부르는 가수’라고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외래 장르에서 유래된 트로트(Trot)보다는 1930년대부터 우리의 정서와 시대를 대변해온 전통 가요가 더 넓은 개념”이란 이유다. “요즘은 너무 밝은 노래만 많아요.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 잃고, 피눈물 나게 가난했던 시절, 그 시대 정서를 위로하던 노래들이 사라지고 있는 거지요. 제 세대와 지금 세대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가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옛날의 뿌리까지 없어지는 걸 원치 않아 저 혼자 발버둥 치고 있어요.”

◇금관문화훈장과 금지곡 세 개

이미자는 지난달 21일 대중음악인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탔을 때 “전통 가요를 지킨다는 의미를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고 했다. 화관(1995년), 보관(1999년), 은관(2009년)에 이어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은 것이다. 이미자는 “참 잘 버텼구나 했다. 사실 그동안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다”며 웃었다.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왜색” “비탄조” 등을 이유로 ‘동백 아가씨(1964)’ ‘섬마을 선생님(1967)’ ‘기러기 아빠(1969)’ 세 곡이 “길게는 20여 년간 금지곡이 됐을 때”였다. “가수로선 자식을 잃은 것 같았죠.”

1964년 발매돼 국내 최초로 100만장 판매를 올린 '동백아가씨' 음반. /조선일보 DB

금지곡 선정 배경은 ‘정치적 이유’보단 ‘경쟁 레코드사의 방해’가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빈관 만찬 때마다 ‘황성 옛터’와 ‘동백 아가씨’를 자주 청했어요. 금지곡 사실을 모르는 듯했죠. 그땐 수동식 기계를 24시간 돌려도 음반 1000장을 겨우 뽑았는데, 동백 아가씨는 국내 최초 100만장 이상 팔렸어요.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를 지은 박춘석씨가 패티김, 김치켓이 있던 오아시스 레코드의 스타 작곡가였는데 제게 곡을 주고 싶다며 지구 레코드로 옮겨오면서 제 히트곡이 계속 나왔고요. 그러니 쟤(이미자)가 없어져야겠구나, 했을지도요.”

2013년 파독 50주년 기념 독일 공연 때 무대 의상은 “이미자가 계속 관객을 만나야 했던 이유”를 상기시켜주는 보물로 꼽았다. 생존 파독 광부들과 함께 그들의 실제 지하 일터를 둘러봤는데 “벽에 붙인 카세트 플레이어로 ‘동백 아가씨’를 돌려 들으며 고된 일을 버텼다는 말에 울컥했다”고 했다. 이어 “내년 데뷔 65주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교민 1세대 위문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현 정부가 참전 용사와 교민 행사를 잘 챙기는 게 인상적인데 만일 남미 교민 공연을 기획한다면 언제든 달려 가겠다”고 했다. “5년 전부터 ‘이제 진짜 마지막 공연’을 입버릇처럼 말해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의 힘이 떨어지는 걸 느껴서요. 하지만 해외에서 고생하신 교민들을 아직 다 못 뵌 게 마음에 걸려요. 그분들과 같이 울고 웃을 기회가 마련된다면 더 이상의 소원은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