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40번째 레터영화 ‘도그데이즈’입니다. 오늘(24일) 시사회를 했는데요, 끝나자마자 기분 좋게~ 노트북을 켰어요. 담달 7일 설 연휴 맞춰 개봉하는 영화라 연휴에 뭘 볼까 고민하신다면 참고가 되지 않을까 해서요.

영화 '도그데이즈'의 완벽한 커플. 유해진씨가 안고 있는 멍멍이 이름은 차장님이랍니다. 주차장에 살아서 차장님. 본명은 와와라고 하네요.

어제부터 날이 유난히 추워서였을까요. 영화관에 앉아, 올라가는 ‘도그데이즈' 엔딩 크레딧을 보며 이런 말을 하고 싶었네요. “따뜻해줘서 고마워.”

이 영화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포스터나 소개글에서 짐작 못할 반전, 인간 무의식의 심연을 파고든 ‘엄훠 대단해' 작가주의, 일해라절해라 공자님 말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미학적 시도, 우리 사회 계급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고발, 위태로운 욕망의 줄타기, 요즘 영화들이 주렁주렁 달고 홍보하는 무슨무슨영화제 초청 스펙. 그런 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외 많은 것이 있습니다. 야밤에 좁은 고시원방에서 나눠먹는 후루룩 라면, 우르릉쾅쾅 천둥번개가 데려다준 선물 같은 인연, 못생겼는데 왕귀여운 강아지, 갑질 진상 건물주가 왜때문인지 건네준 빨간 목도리, 전 남친과 현 남친의 끈끈한 브로맨스, 어릴 적 한눈에 반한 강아지가 남긴 상처, 머리에서 개냄새가 나는데도 끌리는 그녀, 그리고 어떤 대사를 던져도 바로 옆 대화처럼 녹아드는 ‘배우 윤여정'.

네, 윤여정님이 이 영화를 살린 몫이 매우 크지 않을까 싶어요. ‘성공한’ 건축가(성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실은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홀로 먹는 배달 초밥이 맘 편한, 깐깐하지만 알고 보면 속절 없이 따뜻한 캐릭터는 윤여정님을 만나서 생생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윤여정님 혼자서 이 영화의 온도를 최소 10도 이상 올리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 '도그데이즈'에서 라면을 끓여 나눠먹고 있는 윤여정 탕준상 커플. 음식은 역시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죠.

전 영화 예고편을 보고 유해진씨와 강아지 ‘차장님’(주차장에 살아서 이름이 차장님) 커플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요, 유해진씨가 밉상 건물주에서 금사빠 반려견주로 거듭나는 모습은 연기라기보다 일상 같아 보였어요. 그러니까 배우겠지요.

전 반려견을 키우진 않는데(정들까봐 무서워서요.) 언젠가 이 영화의 차장님 같은 녀석이랑 꼭 같이 살아보고 싶어졌어요. 남들은 유해진씨가 연기한 건물주를 다들 밉상이라고만 생각할 때, 짜잔, 그의 앞에 나타난 차장님. 왜냐면 차장님은 간파하고 있었던 거죠. 사실 그는 마음 깊이 정이 많은 남자란 걸. 번개 치던 밤, 그의 집 현관에서 오돌오돌 떨었던 건 차장님의 빅픽쳐. 앙큼한 녀석 같으니.

‘따뜻한 영화’는 사실 만들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어설프더라도 반전을 장착해두던가 아니면 흔하디 흔한 신파라도 끼워두는게 낫지, 조미료 안 쓰고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면서 관객을 만족시키는 건, 대작 명작 걸작 만들기와는 또 다른 섬세한 세공이 필요하니까요. ‘도그데이즈’는 그 어려운 과업을 연기와 진심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설 연휴 누군가와 함께 충전할 온기가 필요하시다면 ‘도그데이즈’를. 추운날 저 멀리 밝혀진 우리집 창가의 불빛 같은 따뜻함이 여기 있습니다. (아, 나중에 OTT에서 봐도 되는 거 아닌가 하실 수 있는데, 그러기엔 멍멍이 배우들이 너무 귀여워요. 귀여운 건 크게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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