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Matthew Dunivan·CJ ENM

“태어나고 열두 살 때까지 자랐던 한국에서 제 영화가 개봉한다는 게 행복하고 꿈만 같아요. 한국에서 큰 응원을 보내주고 계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로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각본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36) 감독이 6일 화상으로 한국 언론과 만났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해서 답답하실 수 있다”면서도,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한국어로 답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캐나다에 이민을 간 나영(그레타 리)이 첫사랑 해성(유태오)과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애틋한 로맨스 영화다.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데뷔작이다.

'패스트 라이브즈' 스틸컷. /CJ ENM

영화의 아이디어는 송 감독과 그의 미국인 남편,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가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시던 뉴욕의 어느 술집에서 시작됐다. 송 감독은 “친구는 어린 시절의 제 모습밖에 모르고, 남편은 어른이 된 제 모습밖에 모르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통역을 하는데, 언어와 문화뿐 아니라 제 인생의 두 부분을 번역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 모두 지나간 과거 어딘가에 두고 온 삶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중 우주를 넘나드는 판타지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인생이라도 여러 시간과 공간을 지나면서 스치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영화에는 ‘인연’과 ‘전생’ 같은 동양적인 관념이 녹아 있다. 송 감독은 “‘인연’이라는 단어가 다른 나라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들 무엇인지 알고는 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을 건드렸다”고 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 개봉하면서 다양한 관객을 만났어요. 인연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을 보곤, 다들 ‘단어는 몰랐지만, 나도 저렇게 느낀 적이 있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누구나 자신에게 소중한 인연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감정이 통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패스트 라이브즈'의 배우 유태오(왼쪽부터), 한국계 캐나다 감독 셀린 송, 미국 배우 그레타 리, 존 마가로./AFP 연합뉴스

송 감독은 영화 ‘넘버3′를 만든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열두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캐나다에 이민을 갔다.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해오다 ‘패스트 라이브즈’로 영화 연출에 처음 도전했다. 아시아계 30대 여성 감독의 데뷔작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건 이례적이다. 셀린 송 감독은 “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러워하신다. 온 가족이 모두 정말 기쁘고 신이 난 상태”라며 웃었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한국인·한국계 감독의 영화는 ‘기생충’(2020) ‘미나리’(2021)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기생충’이나 K팝·K드라마가 한국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를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고 감사를 전했다.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의 한국 개봉(3월 6일)을 앞두고 2월 말 내한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서 자란 유년 시절이 ‘전생(past lives)’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삶 덕분에 한 사람의 언어나 문화, 정체성이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인생엔 수많은 선택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