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45번째 레터‘설 연휴 영화 (거의) 완전정복’<3편>으로 준비했습니다. 3편쯤 되면 대세 영화 말고 팬들(만)이 찾아보는, 순위와 상관없이 열성팬이 확실한 영화가 등장할 차례인데요, 애니메이션 2편과 (어쩐지 설에는 어울리지 않아보이지만) 의미있는 영화 1편을 골라봤습니다. 연휴 마지막날 영화관을 찾을 예정이시라면 먼저 보내드린 <1편>과 <2편>, 그리고 오늘의 <3편>까지 참고해봐주세요. <1편>과 <2편> 링크는 아래에 붙이겠습니다.

[[그 영화 어때] 연휴에 뭘 볼까, 설 영화 (거의) 완전정복<1편>]

[[그 영화 어때] 연휴에 뭘 볼까, 설 영화 (거의) 완전정복<2편>]

애니메이션 '스미코구라시-푸른 달밤의 마법의 아이' 포스터. 색감 참 예쁘죠. 아래 소개해드릴 '아기상어'와 비교해보시면 미감의 차이를 더 뚜렷하게 느끼실 거예요.

아마 ‘그 영화 어때’ 레터 독자분들, 즉 영화에 상당히 관심이 있는 분이라도 이 애니메이션 ‘스미코구라시-푸른 달밤의 마법의 아이’가 설에 맞춰 7일 개봉했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2주간 차지했다고 하네요. 롯데시네마에서만 개봉해서 CGV 주로 가시는 분들은 더더군다나 모르실 듯 해요. 어린 시절 다락 구석에서 혼자 넘겨보던 그림책을 오랜만에 다시 펴보는 기분이 드는 작품이었어요. 그 시절 그 꼬마, 나도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기분. 싸우고 죽이고 미워하고 헐뜯고 총질하고 피 튀기는 영화들 보다가 이 애니 보니까 맘이 절로 정화되더군요. 성인이 봐도 재밌습니다. 저의 강추 애니예요.

그럼 무슨 내용이냐. 스밋코는 구석, 스밋코구라시는 구석 생활. 구석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캐릭터들이 나오는데요(저는 이 설정에서 벌써 폭 빠졌어요), 북극곰이지만 사실은 추위가 싫은 북극곰, 펭귄이지만 내가 펭귄이 맞는지 고민이 깊은 펭귄이 있고요, 지방이 몰려있어서 먹다 남겨진 돈까스 끄트머리도 나와요. 이 녀석의 꿈은 언젠가 누군가 먹어주는 것. 딱딱해서 먹다 남겨진 새우튀김 꼬리도 있네요. 빨대로 잘 빨리지 않아서 남겨진 타피오카, 언젠가 부케가 될 그 날을 꿈꾸는 잡초도 나와요. 일본 애니 캐릭터 설정은 감성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나 ‘와, 정말 이런 발상은 못 따라가겠다'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애니가 딱 그랬습니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마법사들이 스미코들을 파티에 초대하는데, 실수로 막내 마법사가 남겨져요. 그 후로 벌어지는 일인데요, 이 ‘남겨진다’ ‘버려진다’는 정서를 이 애니만큼 포근하고 다정하게 전해주는 작품이 또 있을까 싶네요. ‘스미코구라시-푸른 달밤의 마법의 아이'는 2편이고, 1편이 ‘스미코구라시-튀어나오는 그림책과 비밀의 아이'였는데요, 1월에 개봉했다가 지금은 OTT에 올라와있어요. 쿠팡플레이, 웨이브 등에 있네요. 1편을 레터에 소개해드리고 싶었는데 어어어 어버버하다가 시기를 놓쳤어요. 어린 시절, 어디선가 혼자 남겨진 듯 했거나, 누군가로부터 버려진 듯한 느낌을 받아보신 적이 있다면 1편도 추천합니다. 자신이 언젠가 먹다 남겨진 돈까스 끄트러미나 새우튀김 꼬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으셨다면 아무리 어른이라도(혹은 어른이라서) 보다가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아기상어 극장판: 사이렌 스톤의 비밀'. 9세까지만 관람을 권합니다.

7일 개봉해 설 박스오피스 8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기상어 극장판: 사이렌 스톤의 비밀'입니다. 딱 9세까지만 관람을 권합니다. 위에 말씀드린 ‘스미코구라시'와는 달리 성인이 보기엔 좀 어렵습니다. 어려워서 어렵다기보단 상상력이 어느 선에서 벗어나지 못해 답답하다는 느낌이었어요. 잘 만든 애니는 유아용이라도 성인이 봐도 재밌잖아요. 아기상어 극장판은 노래 좀 부르다가(익숙한 그 뚜뚜루루 노래) 악당 물리치다가, 응? 이게 전부야, 싶은데 끝나더군요. 하지만 제가 어찌 5세나 6세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미취학 아이들이 재잘재잘 놀면서 보기엔 설 극장가에선 아기상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네요. 이 형광 색감은 어디서 나왔나 봤더니 제작사가 미국 스튜디오입니다. 수입 애니군요.

이 점은 12월 겨울 성수기에 개봉했던 ‘뽀로로 극장판 슈퍼스타 대모험'과도 좀 달랐는데요. 일단 색감이 참 뛰어나요. 그래서 큰 화면에 눈만 고정하고 있어도 즐거웠고요, 뽀로로 외에 주연이 여러 명이라 걔네들끼리 우당탕탕 거리는 스토리 라인도 상당히 신경을 쓴 듯 보였습니다. 전 ‘뽀로로 극장판'을 일부러 일반관에서 꼬꼬마들과 함께 봤거든요. 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아뽜, 옴마, 어딨쪄” “쉿, 조용해야지” “엄마, 여기 이거” “응응, 뽀로로 보구, 저기저기 뽀로로 나오네” 등등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아빠의 애쓰는 음성이 사방에서 지원되는 와중에 영화를 봤더니 관람 자체가 매우 생생하고 역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뽀로로 극장판은 개봉 4일째에 11만명 넘었는데, 아기상어 극장판은 4일째 3만명이네요. 아기상어는 상영시간이 83분이나 되는데 좀 더 짧았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영화 '플랜 75'의 한 장면인데요, 뒷편에 보이는 화면에서 '75세가 되면 안락사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을 열심히 홍보하는 장면이 나와요. 태어날 땐 맘대로 못 태어나지만 죽을 땐 선택해서 죽을 수 있으니 좋지 않느냐고 권유합니다.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과연 그럴까요.

역시 7일 개봉한, 지금 극장에서 못 보시더라도 나중에 꼭 보셨으면 하고 추천해드리는 영화 ‘플랜 75′입니다. 제가 전에 레터로도 보내드린 적 있죠. 며칠 전 ‘설 영화 (거의) 완전정복'<1편>에서 영화 ‘소풍’을 비추천하면서 ‘플랜 75′와 비교했는데요, ‘소풍’이 죽음을 지나치게 거칠고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반면에 ‘플랜 75′는 ‘75세가 되면 나라에서 안락사 서비스를 지원해준다'는 가상 현실이 완충 장치가 됩니다. 늙고 병든 가족, 친구, 지인,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 끝까지 삶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고민은 모두의 몫이겠지요.

설 연휴라 3편에 나눠 개봉작을 말씀드렸습니다. 담주엔 대세 배우 티모시 샬라메의 신작 ‘듄2′ 시사회가 있는데 무척 기대가 됩니다. 개봉은 28일. 시사회 전에 가능하면 ‘듄 보기 전에 알아야할 포인트' 비스름한, 작품 배경 설명을 레터로 먼저 보내드릴까 생각 중이에요. ‘듄'이 워낙 방대한 얘기라 원작자 프랭크 허버트의 기본 설정을 모르면 ‘쟤들 왜 저래' 싶을 부분이 있어서요.

그보다 앞서 지난주 시사회에서 만난 추천작을 다음 레터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어떤 작품인지는 그때 공개. 지금 그 영화에 나오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듣고 있는데요, 참 적절해요. (전 음악 잘 쓴 영화가 좋거든요.) 조성진과 다니엘 바렌보임 버전 중에서 제 맘에 더 드는 걸로 레터와 함께 알려드릴게요. 그럼, 연휴 마무리 잘하시고,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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