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뉴욕에서 고향 친구들이 보내준 러시아군의 폭격 장면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론 영상을 보고 온몸이 마비됐어요. 어떻게 현대에도 독립국가에 폭탄을 떨굴 수 있나. 믿기질 않았죠.”

우크라이나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바딤 네셀로프스키(47·Vadim Neselovskyi)가 보내온 인터뷰 답변 녹음 파일 속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1977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바딤은 2011년부터 버클리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재즈계의 쇼팽’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오데사 컨서바토리(음악 학교) 최연소 입학 기록(15세)’을 가진 그는 탄탄한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재기 발랄한 즉흥연주가 주특기다.

바딤의 피아노는 2022년 고향이 전쟁 포화에 휩싸인 뒤부터 절박한 반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전쟁 직후 평화를 촉구하는 앨범 ‘오데사’(2022)를 발표했고, 미국·유럽 전역에서 고향의 전쟁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모금 연주회를 30회 이상 열었다. 1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3일간 열리는 ‘서울재즈피아노페스티벌’의 첫날 무대에도 출연료 없이 올라 특별한 모금 연주회를 꾸밀 예정. 전 관객이 무료로 입장해 바딤의 연주를 들은 뒤 원할 경우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기부금을 자유롭게 액수를 정해 내는 연주회다. 단, 전 좌석은 공연 직전까지 기획사(☎02-941-1150)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이어 2일에는 대구 베리어스 재즈클럽 무대에 선다.

17세 때 가족들과 독일로 이주해 유학했고, 이후엔 미국 대학에 정착했지만, 그의 음악은 고향에서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바딤은 “인터뷰 답변을 녹음하는 이 순간에도 독일 친구들과 함께 여성, 어린이 등 우크라이나의 난민 탈출을 돕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핵심을 형성하는 인생 첫 5년을 포함해 17세까지 나는 고향에서 작곡, 수학, 물리학을 공부했고, 우크라이나와 유대인 민요를 들으며 자랐다. 제 음악에 일반적인 4분의 4박자 대신 5분의 4, 7분의 4 등 변박자가 자주 쓰이는 것도 발칸 지역 전통 민속음악의 특징이 스며든 것”이라 했다.

바딤은 현재 ‘우크라이나 일기(Ukrainian Diary)’라는 이름의 작곡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첫 주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피란을 제안받은 젤렌스키가 ‘나는 권리가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I don’t need a right, I need an ammunition)’고 한 대답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쟁과 비극, 고향 친구들이 겪은 절망과 희망에 대한 뉴스를 접하며 느낀 감정들을 담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라며 말했다. “전 군사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지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 작곡, 연주를 조국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으로 연결할 수 있다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고향은 언제 폭격받을지 모른다는, ‘정상과 비정상’이 혼재된 일상을 살고 있어요. 그 절박함과 희망을 기다리는 마음을 한국 관객과도 공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