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지돈이 신작 '브레이브 뉴 휴먼' 출간을 계기로 본지와 만났다. 조선일보미술관 인근에서 신간을 들어보였다. /박상훈 기자

‘인공 자궁’을 소재로 지난 3년간 소설을 세 편 쓴 남성 작가가 있다. 소설가 정지돈(41). 201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소설 세계를 구축해 마니아층이 두꺼운 작가다. 단편 ‘22세기 서울’, ‘가족의 방문’에 이어 지난달 말 소설 ‘브레이브 뉴 휴먼’(은행나무)을 냈다. 세 소설 모두 인공 자궁이 도입돼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사라진 사회를 그렸다. 이른바 ‘인공 자궁 3부작’. 그는 대체 왜 이렇게 인공 자궁에 몰두할까. 정지돈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시작부터 급진적이다. “여성이 출산을 안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그는 여성인 기자에게 되물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몸을 너무 신성시해 몸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의 중요함을 자꾸 망각”하고 있다. “이미 생리 주기를 조절하고, 노화를 방지하고, 고통을 경감시키고 있어요. 충분히 상상해볼 법한 미래입니다. 지금 이런 상상을 해야 오히려 미래를 받아들일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남성으로서 인공 자궁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남성도 출산의 당사자”라고 했다. “여성만큼은 아니지만 절대 외부인이 될 수 없는, 좀 다른 당사자죠.”

‘브레이브 뉴 휴먼’은 2040년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나는 ‘일반인’과 인공 자궁에서 태어난 ‘체외인’이 공존하는 사회다. 건강한 성인 남녀에게 정자와 난자를 기증받고, 정부의 엄격한 관리하에 무작위 수정이 이뤄진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가 체외인이다. 동두천·평택·양평·문산에 위치한 아기 농장은 수도권의 체외인 생산을 담당한다. 서늘한 리얼리티다. 대한민국은 체외인법을 통과시켜 정부 차원에서 국가적으로 체외수정과 출산을 장려한 세계 최초의 국가라는 설정. 왜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일까? 정지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제일 먼저 소멸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잖아요.”

정지돈은 “서기 3800년의 우주 전쟁보다는 가까운 미래의 기술, 제도 변화를 상상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그의 3부작에는 각각 ‘생식양육부’, ‘생명자원교육부’, ‘양육출산부’ 등 전담 부처가 등장한다. 하필 인터뷰 당일인 지난 9일 ‘저출생대응기획부’를 만든다는 대통령의 발표가 있었다. 이에 “’브레이브 뉴 휴먼’은 예언적인가?” 묻자 그는 “분명히 이렇게 된다. 될 수밖에 없다”고 자신했다.

이 모든 건 ‘가족’에 의문을 던지기 위한 도구다. 그는 “현대사회의 마지막 남은 이데올로기는 ‘가족’인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의 기형적인 저출생 문제의 기저에는 가족의 속박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경향도 있다”는 게 소설가의 분석. 생각을 구체화한 건 뜻밖에도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다. 인공 자궁 도입, 국가의 공동 양육, 출생률 문제 해결 등을 두서없이 늘어놓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섬뜩한 이야기 하지 마라. 니는 어째 소설가라는 애가 그래 인간미가 없나.” ‘그렇게 거부감이 드나?’ 되묻는 과정이 소설의 출발점이 됐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는 반면교사로 삼았다.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면서 휴머니즘과 인간성을 옹호하는 데 그치고, 정작 인간성이 무엇인지 질문은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과연 인공적인 것이 나쁜가에 대한 질문도 해봄직하다”고 했다.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급진적이다. 때론 소설 같다가도 어느 때는 시나리오 같다. 불필요한 묘사가 늘어지지 않고 속도감 있게 전개돼 마치 영상처럼 읽힌다. 그도 처음 시도해보는 방식. “오늘날 소설이 그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을까…. 조금 다른 방식의 묘사가 더 새롭고 흥미롭고 이상하지 않은가요?” 여러 면에서 등단 10년을 넘긴 소설가 정지돈의 지향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