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사동 예화랑 1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곽훈의 회화 '겁/소리(Kalpa/Sound)'. 1993. /예화랑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처음 마련된 건 1995년이었다. 2년 전 독일관 대표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백남준이 베네치아 시장에게 “마지막 남은 국가관을 한국에 준다면 남북 공동 첫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중국 등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결국 자르디니 공원에 들어선 마지막 국가관은 한국 차지가 됐다.

한국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베네치아 몰타 기사단 수도원에서 열리는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 개막식에서 대금 연주자 서승미가 곽훈의 작품 ‘겁/소리,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 앞에서 연주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금 베네치아의 몰타 기사단 수도원에서는 한국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모든 섬은 산이다’(9월 8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관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 36명의 작품을 모아 한국 현대미술의 축적된 저력을 보여준다. 1995년 한국관 개관전 참여작가 4명 중 윤형근(1928~2007), 김인겸(1945~2018), 전수천(1947~2018)을 먼저 보내고 유일한 생존작가로 남은 곽훈(83)이 30년 만에 베네치아를 다시 찾았다. 지난달 개막식에서 만난 곽훈은 수도원 초록 잔디밭에 설치된 당시 작품 ‘겁/소리,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 앞에서 “30년 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도 낯설었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는데, 달라진 한국 미술의 위상을 확인하고 재평가 받는 기분”이라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전시에서 선보인 곽훈의 설치 퍼포먼스 작품 '겁/소리,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 /예화랑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전시에서 곽훈의 설치 퍼포먼스 작품 '겁/소리, 마르코 폴로가 가져오지 못한 것'을 관람객들이 감상하는 모습. /예화랑

30년 전 한국관의 주역들을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신사동 예화랑에서 한국관 개관전 참여작가 중 곽훈과 김인겸, 그리고 한국관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백남준 작품을 모아 3인전 ‘30년: 통로(30 Years: Passage)’를 열고 있다.

먼저 1층에선 곽훈의 작품을 만난다. ‘찻잔’과 ‘주문’, ‘겁’, ‘기’ 시리즈와 이누이트 고래 사냥에서 영감을 얻은 최신 연작 ‘할라잇’의 회화·드로잉 등을 선보인다. 2층 전시장의 주인공은 김인겸.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당시 촬영 영상 및 아카이브 등 귀한 자료와 함께 작가가 1996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의 작업들도 고루 펼쳤다.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전시 중 아크릴 수조에 물을 채운 김인겸의 설치 작품. /예화랑
19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전시 영상. 아크릴 수조에 물을 채운 김인겸의 설치 작품을 관람객들이 중앙 계단을 통해 1층과 2층을 오르내리며 감상하는 모습이 담겼다. /예화랑

김인겸의 딸이자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재도 미술평론가는 “아버지 작품과 관련된 아카이브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며 “아크릴 수조에 물을 채운 당시 한국관 출품작은 원형 전시장이라는 한국관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설치 작업이었고, 관람객들은 중앙부 나선형 계단을 통해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리며 작품을 감상했다. 지금은 한국관 리모델링 후 계단이 없어졌기 때문에 더 귀한 영상이 됐다”고 했다. 3층에선 백남준의 텍스트, 드로잉 아카이브, 사진, 판화 자료 등을 대거 공개한다. 6월 8일까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