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뿌린 대북 전단. /신용석 관장 제공

기관총을 든 북한 공산군 병사 뒤에서 북한 공산군 장교가 그의 어깨를 짚고 있다. 장교 뒤에는 중공 관리가, 그 뒤에는 ‘로서아(러시아) 제국주의’가 그려져 있다. 뒤로 갈수록 인물의 덩치는 점점 커진다. ‘공산침략전’이란 제목의 이 전단(傳單·삐라)에는 ‘북한 공산군 병사들은 로서아를 위한 전쟁에 강제로 끌려나왔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것은 신용석 인천개항박물관 명예관장이 소장한 6·25전쟁 당시 공중 살포된 전단 1000여 점 중 하나다. 한국 측에서 북한군을 대상으로 살포한 전단이다. 작화와 인쇄, 심리전의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오쩌둥이 그릇 안에 한반도를 넣고 젓가락을 든 그림 위엔 ‘중공군은 좋은 무기는 자기네가 차지하고 못 쓸 무기만 북한군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적었고, 괴로운 표정의 어린 북한군과 보름달 속 어머니의 사진을 넣고 이렇게 썼다. ’추석은 왔건마는 고향은 멀고멀다.’

‘황해도 농민들이여, 공산당을 위해 일하지 말라! 꾀병을 부리라!는 직설적인 문구를 넣는가 하면, 곡식을 한가득 안고 있는 아낙네 그림 위에 ‘공산당이 못 가져가게 곡식을 감추자!’고 쓴 전단도 있다. 한 전단에는 밝게 웃고 있는 가족 위 푸른 하늘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그림을 그리고 ‘그리던 태극기, 통일 독립 만세!’라 썼다.

신 관장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1990년 인천시 공보관에서 전시를 연 적도 있다. 그는 “1970년대에 우표를 수집하던 중 영국에서 전단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들에게서 전단을 입수하게 됐다”며 “6·25전쟁의 양상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했다.

심리전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 전쟁 당시의 전단은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투입된 ‘종이 폭탄’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신 관장은 “폭격하기 전 주민들에게 ‘피하라’고 살포한 전단도 있다”며 “야, 그 정신없는 세월에 그래도 민간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싸움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전히 남북 간에 전단 살포가 이슈가 되는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다볼 중요한 자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