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인성

‘투캅스’와 ‘친구’ 이래로 남자 배우 두 명이 이끄는 ‘남성 투톱’ 영화는 국내 흥행의 필요 조건처럼 여겨졌다. 지난해 여름 대작들의 흥행 실패 이후, 올여름 극장가는 위험 부담을 줄이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6월 말부터 상반된 매력의 두 주인공으로 시너지를 노리는 남성 투톱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한다. 하정우·여진구의 ‘하이재킹’, 이성민·이희준의 ‘핸섬 가이즈’, 이제훈·구교환의 ‘탈주’까지 세 쌍의 ‘남남(男男) 커플’이 먼저 등판했다.

영화 '핸섬 가이즈' /NEW

◇난리법석 환장 커플

가장 골 때리는 커플은 ‘핸섬 가이즈’(26일 개봉)의 이성민·이희준이다. 시골로 이사 온 목수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납치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면서 벌어지는 코믹 호러. 오랜만에 보는 ‘얼굴’로 웃기는 코미디다. “유독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역할이었다”는 이성민의 말처럼,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은 살벌한 비주얼로 파격 변신한 두 배우의 B급 코미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과한 연출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미국 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피와 살점이 튀는 슬래셔(slasher) 영화에 오컬트까지 버무려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르물이 만들어졌다. ‘병맛’ 코드에 익숙하지 않다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나, 여름 개봉작 중 가장 신선하다. 관록의 두 배우는 오래된 부부처럼 척척 맞는 호흡으로 과장된 슬랩스틱 코미디도 능청맞게 소화해낸다.

영화 '하이재킹' /소니픽쳐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

◇좁은 비행기 속 극한 대립

‘하이재킹’(21일 개봉)은 하정우와 생애 첫 악역을 맡은 여진구의 팽팽한 연기 대결이 돋보인다.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을 그린 영화로 하정우는 조종사 태인, 여진구는 납치범 용대 역을 맡았다. 비행기는 하정우가 몰지만, 영화는 여진구가 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 하정우 역시 “서로 부딪치는 신이 많았는데 (여진구가) 엄청난 에너지를 뿜을 때가 있었다. 매 회차 전력 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기를 극찬했다.

신파를 덜어내고 최대한 실화에 가깝게 그려냈다. 정공법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며 먹먹한 감동을 주지만,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틀을 벗어나진 못했다. 예고편만 봐도 이미 다 본 것 같은 기시감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해 개봉한 하정우 주연의 감동 실화극인 ‘1947 보스톤’ ’비공식작전’과도 겹쳐 보인다.

영화 '탈주'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때깔 좋은 브로맨스

비주얼은 ‘탈주’(7월 3일 개봉) 커플을 따라갈 수 없다. 대개 거무튀튀했던 북한 배경의 영화들과 달리, 강렬하고 감각적인 영상미로 오프닝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자유를 위해 남한으로 탈주를 계획하는 북한 인민군 중사 규남(이제훈)과 그의 뒤를 쫓는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의 추격 액션극. 운명을 거부하고 이상을 좇는 규남과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욕망을 억누르는 현상의 대립으로 투톱 영화의 강점을 잘 살렸다.

세 작품 중 ‘브로맨스’가 가장 진하게 묻어난다. 쫓고 쫓기는 적수지만 어린 시절 가까웠던 형, 동생이라는 과거사가 얽히며 멜로 못지않게 절절한 눈빛이 오간다. 뒤로 갈수록 인민군의 경계엔 구멍이 숭숭 뚫리고, 긴박한 상황에서 헛발질을 거듭하며 영화도 함께 흔들리는 점은 아쉽다.

그래픽=이진영

고(故)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자 각각 주지훈, 조정석과 호흡을 맞춘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7월 12일 개봉)와 ‘행복의 나라’(8월 개봉)까지 남성 투톱 영화의 강세는 계속될 듯하다. 팬데믹 이후 투자·제작이 위축된 상업 영화 시장에서 성비 불균형이 악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 영화 성인지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흥행 30위 영화의 주연1, 2 성비를 조사한 결과, ‘남-남’ 58.6%, ‘남-여’ 20.7%, ‘여-남’ 13.8%, ‘여-여’ 6.9% 순으로 ‘남-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김형호 영화 시장 분석가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젊은 관객층에게 ‘한국 영화는 뻔하다’는 선입견이 생겼다는 것”이라면서 “편견을 깰 수 있는 코미디 장르가 유리해 보이나 현재로선 ‘인사이드 아웃2′의 흥행에 따라 여름 개봉작들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