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 두목이 전과자 갱생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학업에 뜻을 둔 조직폭력배 2인자가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만연한 ‘학폭’을 처단한다’. 조폭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조폭 히어로’ 드라마가 논란을 빚고 있다.

OTT 웨이브·티빙·왓챠가 공동 공개하는 8부작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이하 ‘조폭고’)와 JTBC 수목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이하 ‘놀아주는’)가 대상이다. 엄태구·한선화가 주연을 맡은 ‘놀아주는’은 조직을 청산한 전직 ‘큰 형님’ 서지환(엄태구)이 전과자 80%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 ‘목마른 사슴’을 운영하면서 겪는 로맨스를 그린다. 드라마 ‘조폭고’에선 대학에 가고 싶은 조폭 2인자 김득팔(이서진 특별 출연)이 열아홉 살 왕따 고등학생 송이헌(윤찬영)에게 빙의되면서 학폭 문제 해결사로 변신한다.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의 한 장면. 조폭 보스에서 사회적 기업 CEO로 변신한 엄태구(왼쪽)와 그가 한눈에 반한 키즈 크리에이터 한선화. /JTBC

둘 모두 동명 웹소설이 원작이다. ‘조폭고’는 원작의 동성애 코드를 고교생들의 우정과 성장으로 대체했고, ‘놀아주는’은 전과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좀 더 가미했다. 배우들 열연 덕에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도 있다.

‘조폭’인 주인공은 멋있게 묘사된다. ‘조폭고’ 주연 윤찬영은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과 KT seezn(시즌) ‘소년비행’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K학원물’ 대표 주자로 꼽히는 배우. 이번엔 소심한 왕따 고등학생과 그 몸에 빙의된 마흔일곱 살 조폭의 1인 2역을 맡아 액션은 물론 학교 폭력과 가정 폭력을 극복하는 감성 연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시아 OTT 플랫폼 VIU에서 태국·인도네시아 1위를 달리고 있다. 전 세계 70여 국에서 방영 중이다.

드라마 ‘조폭고’의 장면. 조폭 2인자 김득팔의 영혼이 빙의된 왕따 고등학생 역의 윤찬영(왼쪽)이 조폭 조직원과 맞서고 있다. /넘버쓰리픽쳐스

영화 ‘밀정’ ‘낙원의 밤’ 등에서 허스키한 중저음과 카리스마 있는 눈매로 악역의 진수를 보여준 엄태구는 캐릭터 속에서 정의롭고 순수한 내면을 끄집어낸다. 어린이 콘텐츠를 만드는 키즈 크리에이터 고은하(한선화)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콘텐츠 경쟁력 조사기관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의 드라마 화제성 부문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설정부터 내용 전개까지 조폭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드라마 속에서 조폭은 스승을 존경하며 예의 바르고(‘조폭고’), 불의에 맞서 의협심을 발휘하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놀아주는’) 역할이다. 주인공은 요즘 인기 있는 훈남 스타일이고, 아이돌 같은 조각 외모의 배우들이 주인공을 따른다.

드라마 제작진은 “폭력으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품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지만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등 조폭을 미화한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놀아주는’에서 한선화의 실수로 엄태구가 다치자 검은 정장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지금이라도 잡아서 족칩니까, 형님” “형님 갈비뼈를 아작을 냈는데, 최소한 허리뼈랑 등뼈는 분리를 하고 등심이랑 안심을 확인해야죠”라고 말한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소셜미디어 등에 조폭인 걸 자랑하는 ‘MZ 조폭’까지 등장한 요즘 조폭을 미화하고 환상을 주는 내용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