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원, ‘Qiosmosis D23-b-2′(2023). mixed medium on paper. 63×94cm. /청작화랑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영원(77·전 홍익대 교수)에게 1994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그는 기무(氣舞)를 추다가 흙으로 덮은 원기둥을 손으로 쳐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긋고 뜯고 흠집 낸 흙기둥의 자국이 고스란히 작품으로 남았다.

그때 시작된 기운생동 시리즈가 화폭으로 이어졌다. 김영원은 2018년부터 순간적인 에너지를 화폭에 일필휘지로 긋는 회화 연작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30일까지 열리는 김영원 개인전에 회화 27점과 조각 7점이 나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기공(氣功) 수련과 명상을 통해 자유로워진 내가 몸을 붓으로 써서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김영원, 'Cosmic Force.p-2'(2020). 한지, 91×73.5cm. /청작화랑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만들었다. 동상 제작자로 대중적 명성을 얻었지만 본업은 조각가. 추상미술이 득세하던 미술계에서 인체라는 일관된 테마로 작업을 해왔다. 서울 환일고 미술교사로 근무할 때는 체력장에서 죽기 살기로 철봉에 매달린 아이들을 보며 ‘바로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1970~1980년대 천착한 ‘중력, 무중력’ 시리즈가 그렇게 탄생했다. “갈수록 내가 경직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 말에는 만들어 놓은 조각을 높은 데서 내던져 깨뜨린 뒤 그 파편을 붙여 작품화했다. 극도의 피로감에서 선(禪)과 기공 명상을 만난 후 비로소 돌파구를 찾았다.”

김영원, '그림자의 그림자(바라보다)'. 2017. Painting on Bronze. 81×16×25cm. /청작화랑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의 거대한 인체 조형물도 그 이후 나왔다. 8m 높이의 금빛 조각상 ‘그림자의 그림자-길’이다. 이번 전시에선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 소품을 볼 수 있다. 내년에는 김해시 주관으로 김영원 조각공원과 미술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작가는 “내가 만든 인체 조각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사유 구조에 의해 나오는 결과물이라면, 회화는 상념이 사라진 상태에서 순간 이뤄지는 기세의 미학”이라며 “고구려 강서대묘 사신도에서 기운생동하는 주작과 현무처럼, 내 그림의 획도 발산하는 기운을 담고 있다”고 했다.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