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어쩌다 대학생들에게 강의할 일이 생기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연말 연초에 ‘2025년 트렌드’에 관한 책이나 ‘2025년 대전망’ 이런 책 좀 사보지 마세요”라는 말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리포트나 누군가의 전망으로 미래를 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불안한 마음에 이거라도 모르면 뒤처질까 봐 트렌드에 관한 책이라도 읽으려고 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대학생은 트렌드를 따라 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트렌드를 만들고 이끌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트렌드에 관한 책은 다음 해가 되면 다시 펼쳐볼 일도 없고 결국 쓰레기가 되기 때문에 더더욱 안 샀으면 좋겠다. 이 와중에 꼭 그 책을 읽고 싶다면 차라리 전자책을 사볼 것을 권한다.

1980~1990년대에는 문화를 선도하는 게 대학생들이었다. 대학생들이 듣는 음악이 유행을 하고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패션이 트렌드가 되고 대학생들이 보는 영화가 시대를 대변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는 어떻게든 대학생 형, 누나들을 흉내내고 싶어서 괜히 의미도 모르면서 ‘아침이슬’을 따라 부르고 ‘늙은 군인의 노래’를 들으며 어른 흉내를 냈다.

지금 대학생들은 대학생이 되자마자 취업 준비에 바빠 문화를 즐길 시간이 없다. 영화나 드라마도 유튜버가 편집해준 하이라이트 몰아보기 영상으로 보고, 콘서트나 페스티벌에 가고 싶지만 돈이나 시간이 별로 없어서 못 간다. 책도 취업할 때 면접을 위해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몇 권 훑어볼 뿐, 시나 소설을 읽으며 문학에 심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에게는 문화를 선도하거나, 문화를 이끌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렇게 대학생들이 취업에만 매달려 있는 사이 문화의 주도권은 고등학생들에게 넘어갔다. 이런 현상은 1990년대 말 H.O.T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시절에는 고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대중 가수고 고등학생들이 주도하는 패션이 유행하는 시대였다. 고등학생이 일으키는 문제는 사회문제가 됐지만 더 이상 대학생들의 문제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생에게 넘어갔던 문화의 주도권은 중학생을 넘어 요즘은 초등학생에게 넘어갔다. ‘마라탕후루’라는 노래가 그렇고,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게임이 유행이 되고, 초등학생들이 좋아하는 먹거리를 다뤄야 유튜브에서도 조회 수가 많이 나온다. 나는 대중문화의 주도권은 대학생이 잡고 있어야 우리 문화의 수준이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