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악단에서 활동하는 단원들로 구성된 ‘고잉 홈 프로젝트’. 14일 예술의전당에서 단원 대부분이 일어서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했다. /고잉 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모두 점잖게 앉아서 연주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1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 풍경은 달랐다. 후반부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하기에 앞서 더블베이스·첼로를 제외하고 단원들이 앉는 의자 대부분을 중간 휴식 시간에 모두 치웠다. 설마 단원들이 일어서서 연주할까.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그랬다.

이날 일어서서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한 오케스트라 이름은 ‘고잉 홈 프로젝트(Going Home Project)’. 국내외 악단에서 활동하는 전현직 단원들이 뭉친 ‘올스타 팀’이다. 그래서 악단 명칭도 ‘귀향(歸鄕)’이라는 뜻으로 ‘고잉 홈’이라고 붙였다. 지난해 12월부터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 연주회를 열고 있는데, 후반부마다 이렇게 의자를 치워버리고 단원 대부분이 일어서서 연주하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이날 플루트 수석을 맡은 조성현 연세대 교수는 “관악기 단원들은 앉아서 연주할 때보다는 아무래도 호흡에 더 신경을 써야 하지만, 훨씬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단원들의 에너지를 끌어내기도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후반으로 갈수록 악단 사운드의 응집력과 폭발력도 커졌다.

최근 해외에서도 단원들이 일어서거나 심지어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유로운 연주 동작과 동선(動線)을 통해서 단원들의 표현력을 극대화하려는 음악적 시도다. 거기에 ‘고잉 홈 프로젝트’는 별도의 지휘자를 두지 않고 서울시향 악장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지휘와 악장 역할을 겸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 없이 자율 학습을 하는 우등반과도 비슷한 셈이다. 이날도 ‘빰빰빰/빰’으로 시작하는 유명한 교향곡 5번 첫 악장을 연주하면서 루세브가 가볍게 뛰는 것처럼 발뒤꿈치를 들었다가 내려오는 방식으로 시작 사인을 보냈다.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꺼낸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별도의 지휘자 없이 단원들이 자율적으로 연주에 참여하는 방식이 오케스트라의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제’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8월 13일·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에서도 후반부는 일어서서 연주할 예정이다. 12월 8일 마지막 연주회에서는 독창과 합창단까지 필요한 교향곡 9번 ‘합창’을 들려준다. 과연 이날도 일어서서 연주할까. 손열음은 “아직은 비밀”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