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과 일곱 살 두 딸을 둔 김진수(42)씨는 아이들 학원이 일찍 끝나는 날은 빨리 퇴근한다.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회사에 먼저 퇴근한다는 사실을 따로 보고할 필요도, 결재를 받을 필요도 없다. 김씨가 다니는 코스닥 상장 화장품 기업 ‘마녀공장’이 2022년 2월부터 시행 중인 ‘완전 자율 출퇴근’ 제도 덕분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에 있는 코스닥 상장 화장품 회사 '마녀공장' 사옥에서 직원들이 자녀 사진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뒷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진수, 김솔미, 최혜수, 장은정, 손혜선씨. /조인원 기자

이 회사는 하루 중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출퇴근이 가능하다. 한 달(30일) 기준 171.4시간의 근무시간만 채우면 된다. 하루 혹은 일주일 동안 얼마나 일했는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보통 유연근무제를 택한 회사라 하더라도 공통으로 근무해야 하는 ‘집중 근무시간’은 정해두는데, 마녀공장은 이마저도 없다. 근무 일정은 함께 일하는 팀 내에서만 간단히 공유하면 된다.

다소 모험적일 수도 있는 이런 근무 형태는 2022년 취임한 유근직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의 의지로 도입됐다. 2012년 설립된 마녀공장은 올리브영과 온라인 판매 플랫폼 등을 통해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대표 상품인 클렌징 제품과 앰풀, 토너 등 기초 화장품을 앞세워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에 활발히 진출하며 대표적인 중소 ‘K뷰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보니 직원들이 야근을 하거나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유 대표가 “우리 회사 직원들은 나이도 젊은 편이고 창의성이 필요한 업무가 많으니 근무시간을 완전히 개인의 자율에 맡겨보자”고 제안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일에 집중해야 할 때 집중하고, 쉴 때는 확실히 쉴 수 있게 되면서 능률이 오르고 직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작년 6월 마녀공장은 코스닥에 상장하며 성장세를 확인했다. 혁신적인 근무 제도 개편으로 올해 고용노동부 ‘일·육아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특히 아이를 둔 직원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거웠다. 김진수씨는 “2~3일 몰아서 일을 하면 하루 정도는 연차 없이 쉴 수 있다”며 “평일에도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 많아 아내와 아이들 모두 좋아한다”고 말했다.

세 살 아들을 키우는 손혜선(36)씨는 “아이가 새벽에 갑자기 아플 때 간호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다음 날 피로가 누적된 채 출근해야 하는데 이런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여덟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을 둔 장은정(47)씨는 “예전 직장에선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에서 참관 수업이 있을 때마다 미리 보고해야 겨우 시간을 뺄 수 있었다”며 “지금 직장에선 눈치 볼 필요 없이 시간을 낼 수 있어 부담이 훨씬 덜하다”고 말했다.

근무 도중 잠시 자리를 비우는 ‘외출’도 가능하다. 집이 가까운 직원들은 오후 시간 아이의 하원만 도와준 후 다시 회사로 돌아와 업무를 보기도 한다.

실제 출산율에도 긍정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총 직원 수가 100명이 안 되는 마녀공장에선 올해 4명의 아기가 태어났고 2명은 엄마 배 속에 있다. 2022년 신생아 수 1명, 2023년 2명에 비해 크게 늘었다.

회사는 성장하며 거둔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고 있다. ‘출산휴가 전체 기간 급여 100% 지급’이 대표적이다. 출산휴가는 출산 전후 90일을 보장한다. 이 중 60일은 회사가 통상임금 전액을 지급해야 하고, 나머지 30일은 월 최대 210만원 한도 내에서 국가가 급여를 지급한다. 마녀공장은 회사의 의무 지급 기간인 60일은 물론, 나머지 30일 동안에도 정부 지원금에 회사 지원을 더해 급여 전액을 지급하고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회사는 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면 휴직 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대체 인력을 바로 채용한다. 특히 대체 인력을 기간제나 시간제가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두 살 아들을 둔 김솔미(33)씨는 “육아휴직을 써도 회사에서 정규직 대체 인력을 바로 뽑아주니 동료들에게 업무 공백으로 인한 미안함이 덜 든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회사 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쓰는 직원이 없다는 점이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은 만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의 경우 단축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한 살 아들을 키우는 최혜수(34)씨는 “현재 유연 근무제만으로도 충분히 육아에 필요한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며 “단축 근무를 하면 급여가 줄어드는데 굳이 덜 일하기보단 근로시간을 채우는 게 내 커리어에도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사 담당 한상범 차장은 “직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제도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며 “난임 치료가 필요한 직원들을 위해선 연 3일의 난임 휴가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저출생 완화를 위해 일·가정 양립과 남녀 고용 평등에 앞장선 기업의 사례를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