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영화야, 드라마야….’ 국내 드라마(시리즈)가 TV 드라마 틀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특징이 혼합된 ‘강력한 혼종’이다. OTT 시청 시대가 열리면서 두 시간짜리 영화와 16부작 TV 드라마 사이에 있는 혼종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14일 공개되는 박훈정 감독의 4부작 ‘폭군’(디즈니+) 역시 드라마치고는 짧지만 영화치고는 주인공의 서사를 넉넉히 쌓아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선에 걸친 작품이 됐다.

영화 '마녀'의 세계관을 빼닮은 드라마 '폭군'의 주인공 자경(배우 조윤수). 하나의 사건에 집중한 영화 같은 구성이지만, 4부에 걸쳐 주인공 서사와 재미의 살이 채워졌다. /디즈니+

제작 현장에서는 영화 인력과 드라마 인력이 협업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크로스오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시청 행태 변화 속에서 창작자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공간이 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드라마 크로스오버 활발

최근 OTT를 통해 시청자들은 영화 같은 영상미에 드라마적인 전개가 결합된 ‘혼종’ 드라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4부·6부·8부 등 이야기 규모에 따라 갈수록 분량이 자유로워지고, 소재 제한도 사라지고 있다. ‘마스크걸’(넷플릭스), ‘최악의 악’(디즈니+), ’운수 오진 날’(티빙) 등 OTT에서 흥행한 드라마들에 공통적으로 붙은 후기는 ‘영화 같은 드라마’라는 것이다. 이는 그저 느낌이 아니라 드라마 제작 현장의 지형 변화에 기인한다. 감독을 비롯해 영화판 인력이 대거 드라마판으로 넘어왔다. 영화감독이 처음부터 혼자 드라마를 기획하고 완성한 경우도 있지만, 기존 드라마판의 인력이 가진 기획력과 노하우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산하의 영화 제작사와 드라마 제작사가 협업해 성공했던 ‘최악의 악’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세계’ ‘검사외전’ ‘헌트’ 등 범죄·액션 영화 맛집이지만 드라마 제작 경험은 없었던 제작사 사나이픽처스와 ‘무인도의 디바’ 등 드라마 제작에 주력해왔지만 액션 장르 경험은 적었던 바람픽쳐스가 공동 제작했다. 국내 느와르 드라마 중 전례를 찾기 힘든 영화적인 완성도를 12부작에 걸쳐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영화 같은 연출에 긴 호흡의 이야기가 결합한 '마스크걸'(위)과 '최악의 악'. /넷플릭스·디즈니+

넷플릭스 비영어 TV 시리즈 부문 세계 1위까지 올랐던 ‘마스크걸’도 드라마·영화 등을 만들어온 CJ ENM 스튜디오스의 기획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김용훈 감독, ‘국제시장’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의 류성희 미술 감독이 참여해 빼어난 미장센(시각 요소 배치)을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 밖에도 드라마 작가와 영화감독, 또는 영화 작가와 드라마 감독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크리처 드라마 ‘스위트홈’(넷플릭스)은 “드라마에서 영화 스태프가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만들어냈던”(하정수 넷플릭스 한국 프로덕션 총괄) 초기 시도로 꼽힌다.

◇회차 늘리기 등엔 비판도 나와

CJ ENM 관계자는 “기존에는 소재에 따라 ‘드라마에 더 어울리느냐, 영화로 풀었을 때 더 잘 어울리느냐’하는 암묵적인 한계가 존재했다”며 “지금은 크로스오버가 활발해지면서 창작자는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소재를 최적화해 표현할 수 있는 장르를 선택하고 여러 장르의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런 ‘혼종’ 중에는 영화 이상으로 강력한 한 방을 남긴 작품도 있고, 대중과는 괴리된 실험적인 작품으로 남는 사례도 있다. 영화인의 진격이 계속되면서 드라마에 잘 적응한 감독과 그렇지 못한 감독으로 평가도 갈리는 편이다. 시청자 입장에선 완성도만 높다면 영화의 형태든 드라마의 형태든 중요치 않은 시대가 됐다. 대신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올라가고 있다. 구독료를 거두기 위한 무리한 분량(회차) 늘리기 등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자극적이고 험한 장르 편중, 청소년도 볼 수 있는 드라마의 감소 등도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