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가서 킥보드 탈 친구 여기 모여라!”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서백균(43)·김수미(42)씨 부부 자택에 들어서자 서씨가 마치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처럼 이렇게 외쳤다. TV 시청 삼매경에 빠졌던 무겸(8)·하륜(5)·승완(3)·승현(3) 형제가 “저요!”라고 말하며 벌떡 일어서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남자아이들은 말을 안 들어서 키우기 어렵다던데 일사불란하다’고 하자 서씨는 “아이들 기운에 맞춰 ‘하이톤’으로 얘기하면 꽤 협조적으로 나온다”며 “EBS에서 방송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라고 말했다.

서백균·김수미씨 부부와 네 아들이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아파트 놀이터 분수대에서 물놀이를 하다 셀카를 찍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남편 서씨, 첫째 무겸, 둘째 하륜, 아내 김씨, 쌍둥이 승완이와 승현이. /장련성 기자

서씨는 1998년 S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호기심 천국’ 등 프로그램에서 리포터와 진행자로 활동했다. 2015년 아내 김씨와 결혼하고 이듬해 첫째 무겸을 낳았다. 이후 인천교통방송(현 경인교통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는 2017년 일을 그만두고 ‘주부 아빠’의 삶을 시작했다. 아내 김씨가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다.

첫째의 까다로운 입맛이 이들 부부에게 예상치 못한 ‘사업 아이템’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아이가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입맛이 예민해 온종일 굶을 때도 많았다”며 “남편과 부업으로 운영하던 음식점 주방에서 아이가 먹을 만한 이유식을 매일 연구·개발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만든 이유식은 지인들 입소문을 타고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김씨는 “어떻게 알고 돈을 보내줄 테니 이유식을 팔라는 연락이 계속 쏟아져 저희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최근 5형제 엄마가 돼 화제가 된 개그우먼 정주리씨 자녀들도 입맛이 까다로워 김씨네 이유식을 먹였다고 한다. 결국 부부는 서씨가 육아를 전담하고 김씨가 유기농 이유식 사업에 도전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현재 직원 10명, 연 매출 20억원 규모 사업으로 커졌다.

부부는 2019년 둘째 하륜, 2021년 쌍둥이 승완·승현을 출산했다. 서씨는 집에서 업체 마케팅 업무를 맡으며 육아를 전담하고 김씨가 회사로 출근한다. 서씨는 “4형제를 기르며 ‘영유아 육아는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시기 육아 성패는 아이들과의 ‘에너지 싸움’에 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 재우고 씻기고 놀아주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지치고 우울해지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이걸 귀신같이 알아채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며 “이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체력이 받쳐주는 남자가 영유아 육아에 더 적합하다”고 했다.

그러나 ‘주부 아빠’로 사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우선 주변 시선 때문이다. 주변 이웃들로부터 ‘이혼남이냐’ ‘저 집은 아빠가 능력 없는 백수인가보다’ ‘아내랑 사별했느냐’ 등 별별 말을 다 들었다고 한다. 서씨는 “이런 말이 마음속에 쌓이고 자격지심이 생겨 평생 싸워본 적 없는 아내와 말다툼까지 하게 됐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때면 키즈카페처럼 붐비는 곳보다는 사람들 눈을 피해 교외 식물원이나 공원으로만 가게 되더라”고 했다. 김씨는 “아빠가 육아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해 엄마·아빠 둘 다를 힘들게 한다”며 “저출생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고 했다.

다둥이를 기르는 데 대해 주변에서 ‘정부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부부는 출산축하금 외에는 기저귀 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 자녀 출생 시기, 소득 수준 등 촘촘한 제한 조건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성가족부 아이 돌봄 지원 사업은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다른 데다 중위소득 150%(5인 가구 기준 약 1000만원) 이상이면 아예 지원금을 안 준다. 2016년 12월 31일을 전후로 출생한 아동이냐에 따라 지원 금액이 또 다르다.

서씨는 “사업 일이 몰려 돌봄 지원이 필요해 신청했는데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니 너무 허탈하더라”며 “정책마다 내야 할 서류도 너무 많아 다둥이 부부는 준비가 어렵다. 저출생 정책들이 행정적으로 통합돼 서류는 한 번만 내도록 절차가 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 돌봄 지원 사업을 신청하려면 관공서에 소득·재산 신고서, 건강보험료 납부확인서, 금융·신용정보 제공동의서, 신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다른 부처나 지자체 저출생 정책을 신청하려면 이와 비슷한 서류들을 또 준비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는 무엇보다 다둥이 안전 관련 정책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최근 부부는 자녀들을 데리고 서울 강남의 한 관공서를 찾았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뺑뺑이’를 돌다 도로 인근 주차 공간에 차를 대고 아이들을 내렸다. 쌍둥이가 반대편 조수석에서 내리는 엄마에게 가려다 직진하던 차와 거의 충돌할 뻔했다고 한다. 서씨는 “네 아이를 한 명씩 내리다 보면 다른 아이를 잠시 시선에서 놓칠 수밖에 없다 보니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어린 다둥이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 안전하게 승하차할 수 있는 주차 구역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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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합니다. 위원회 유튜브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은 위원회(betterfuture@korea.kr)로 사연을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