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남녀가 아이스커피 하나를 가운데 놓고 이마를 맞댄 채, 빨대로 마시고 있다. 아이스커피는 '혼부라'당의 여름철 '핫템' 이었다. 만문만화가 안석주가 조선일보 1930년 7월16일자에 그렸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코오피의 낟을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그러는 그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효석(1907~1942)은 서른 한살이던 1938년 발표한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커피 원두를 구입해 갈아서 내려마시는 취미를 공개했다. ‘낙엽 타는 냄새 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라던 그가 떠올린 것은 ‘가제(갓) 볶아낸 커피 냄새’였다. 대표적인 커피 마니아였던 셈이다.

'커피 마시는 법'을 설명하는 기사도 신문에 종종 실렸다. 당시엔 커피 가루를 물에 넣고 끓여서 마셨다. 조선일보 1937년 11월30일자

◇잘 끓인 커피 한잔, 도회인만의 여유

이효석 못잖은 ‘커피당(黨)’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쓴 박태원(1909~1986)이다.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낸 만문만화가 안석주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다방 취미를 유행시킨 장본인’(조선문단30년측면사,조광 제5권제6호)으로 그를 지목한다. 박태원은 입맛이 까다로웠다. ‘늘 다녀 그 솜씨를 잘 알고 있는 끽다점 외에서 나는 일찍이 가배차를 마신 일이 없소’(기호품 일람표 下, 동아일보 1930년3월25일)라고 공언할 정도였다.

‘탁류’의 채만식도 추운 겨울날 즐기는 커피를 사랑했다. ‘활짝 단 가스난로 가까이 푸근한 쿠션에 걸터앉아 잘 끓인 커피- 한 잔을 따끈하게 마시면서 아무 것이고 그 때 마침 건 명곡 한 곡조를 듣는 그 안일과 그 맛이란 역시 도회인만이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약(藥)인 것이요, 그것을 모르고 도시에 살다니 그는 분명 촌맹(村氓)이며 가련한 전(前)세기 사람일 것이다.’(茶房讚,조광 제5권제7호)

1913년9월8일 순종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칙임관 이상 고관을 대상으로 연 오찬 메뉴. 마지막 순서로 커피가 등장한다./국립고궁박물관 소장

◇90년 전 ‘커피는 일상 생활의 필수품’

100년 전 커피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목 마를 때는 냉수나 먹지’ 이것은 벌써 옛말이 되고만 요새올시다. 시체 사람 처놓고 커피니 홍차니 코코아니 하는 차를 안 자시는 분이 별로 없으시겠지요’(몸 피곤할 때는 커피-보다 녹차,조선일보 1936년5월31일)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이것은 유행이 아니라 외국의 풍습이 조선에 들어와 일상 생활의 한 필수품으로 뿌리를 박게 되는 경향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라며 커피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일상에 자리잡은 대세라고 했다.

1920년대 신문엔 커피 끓이는 법을 소개한 기사가 종종 실렸다. ‘우리 가정에도 차차 차먹는 법이 유행됩니다. 연말연초에 손님접대에는 차 만드는 법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로 시작한 기사는 코코아, 홍차와 함께 커피 끓이는 법을 이렇게 소개한다.

‘커피차는 진한 다갈색을 눅눅지 않은 것으로 택하야 주머니에 넣고 차관은 먼저 더웁게 하였다가 사용할 것이올시다. 커피에 넣는 우유는 반드시 더운 것을 쓸 것이요, 크림을 넣으려면 찬 것을 칠 것이올시다. 커피의 분량은 한 사람 앞에 두 숟갈로 한 숟갈(?), 더운 물은 칠팔 작(勺) 가량 넣을 것입니다.’(손님 접대에 알아둘 세가지 차 만드는 방법, 조선일보 1924년 12월31일)

당시 커피 원두를 물과 함께 끓인 후 설탕, 우유를 타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커피 끓이는 법’은 1930년대 후반까지 가정면의 단골 목록이었다. ‘커피 마시는 법’해설도 등장한다. ‘커피를 감정할 때는 제1 빛깔, 제2 향기, 제3 맛, 제4 마신 뒤에 받는 상쾌한 감’이라며 ‘윤기가 있고 연한 맛이 있으며 침착한 고동색’을 제일로 쳤다. (陶醉의 仙境에 인도하는 야릇한 향기의 정체, 조선일보 1937년12월1일)

한국인 최초로 커피 마신 기록을 남긴 문관 민건호의 '해은일록'/부산박물관 소장

◇요즘 핫템’ 아이스커피 유행

안석주는 1930년 여름 풍경을 스케치한 만문만화에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놓고 연인 남녀가 정답게 빨대로 먹는 장면을 그렸다. ‘아이스 커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해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빨아먹는다. 사랑의 아이스커피-, 이집에서 아이스커피-, 저집에서 아이스커피-, 그래도 모자라서 혀끝을 빳빳이 펴서 ‘아다시! 아이스 고히가, 다이스키, 다이스키요!’(전 아이스커피가 좋아요, 좋아), 와시모네(나도 그래)”(1930년 여름, 조선일보 1930년7월16일) 요즘 젊은이들의 ‘최애 아이템’인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100년 전 경성 거리에서 유행했던 셈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8월20일부터 개최중인 특별전 '요즘 커피' 포스터

◇커피 마신 한국인 최초 기록, ‘해은일록

마침 국립민속박물관에선 특별전 ‘요즘 커피’(2024년 8월20일~12월20일)가 열리고 있다. 개항기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의 입맛에 파고든 커피의 역사를 훑는다. 이 중 문관 민건호(1843~1920)이 쓴 일기 ‘해은일록’(海隱日錄)이 눈길을 끈다. 커피를 마신 한국인이 남긴 최초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민건호는 1884년 몇 차례 커피를 대접받은 사실을 적었다.

‘7월27일 오시 정각에 윤정식의 집을 방문했다. 조금 있다가 당소의(唐紹儀)가 부산 해관에서 왔다. 갑비차(甲斐茶), 일본 우유, 흰 설탕 큰 종지 하나, 궐련 2개를 대접받았다.’

당소의는 조선 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초청받은 묄렌도르프 수행원으로 내한, 주 조선총영사를 거쳐 1911년 신해혁명 후 수립된 중화민국 초대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민건호는 1883년 부산항 감리서 서기로 출발, 감리서 방판, 다대진 첨사 등을 지내면서 1894년까지 부산서 생활했다.

1883년 12월 방한한 퍼시벌 로웰이 이듬해 1월 경기도 관찰사 김홍집 초청으로 별장을 방문해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도 흥미롭다. ‘1884년에 우리는 ‘잠자는 물결’(The House of Sleeping Waves)이라는 집에 다시 올라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식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로웰은 조미 통상수호조약 체결후 미국을 방문한 보빙사 일행 안내를 맡았고, 이후 고종 초대로 방한해 3개월간 머물렀다. 1885년 ‘조선,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출간했다.

2023년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소비량은 405잔. 세계 평균 153잔의 두배가 넘는다. 민속박물관 ‘요즘 커피’ 특별전은 ‘커피 공화국’의 연원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참고자료

국립민속박물관, 요즘 커피, 2024

채만식, 茶房讚, 조광제5권제7호, 1939.7

안석영, 조선문단30년측면사, 조광제5권제6호, 1939.6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조선문학독본, 조선일보사 출판부, 19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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