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86번째 레터는 4일 개봉한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입니다. 팀 버튼 감독의 출세작인 ‘비틀쥬스’(1988)가 36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는데요.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을 맡기 전, 위노나 라이더가 ‘가위손’의 여주인공이 되기 전이니 얼마나 오래된 영화인지 알 수 있죠. 세 사람이 속편으로 다시 뭉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 이 영화는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의 미치광이 유령 비틀쥬스(마이클 키튼)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비틀쥬스를 보지 못한 분들,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나지 않는 분들을 위해 먼저 세계관을 소개 해 드릴까 합니다. 팀 버튼 표 사후 세계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인데요. 갓 죽은 이들은 ‘신참 유령들을 위한 지침서’를 받고, 지박령처럼 집 안에 갇혀서 125년을 살게 됩니다. 그 사이 집 밖으로 나가면 모래벌레의 공격을 받게 되죠. 비틀쥬스는 유령의 집에서 귀찮은 인간들을 내쫓아 주는 악령으로, 그의 이름을 세 번 부르면 소환할 수 있습니다.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팀 버튼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은 만큼 전편의 세계관을 제대로 살려냈습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다소 조악해보였던 모래벌레도 자본의 힘과 발전한 기술로 화려하게 부활했고요. 마을 전경을 비추며 시작되는 오프닝부터 유령 부부의 낡은 집, 주인공 리디아(위노나 라이더)의 삐죽삐죽한 앞머리, 하물며 오프닝 크레딧의 글씨체까지 그대로입니다. ‘비틀쥬스’를 좋아하셨던 분들이라면 세심한 디테일에서 팀 버튼 감독의 비틀쥬스에 대한 사랑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1988년작 '비틀쥬스'에서 염세적인 10대 소녀 리디아 역을 맡은 위노나 라이더. /워너브러더스
36년 만의 속편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엄마가 된 리디아(왼쪽·위노나 라이더)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내 인생은 암실”이라며 염세적인 말들을 내뱉던 고스족 소녀 리디아(위노나 라이더)는 이제 중년의 영매가 됐습니다. 자신과 닮아 반항적인 10대 딸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 때문에 속을 썩죠. 아스트리드는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고, 영매로 활동하는 엄마를 부끄러워합니다. 실종된 아빠를 그리워하며 방황하던 아스트리드는 위험에 처하고, 리디아는 딸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미치광이 유령 비틀쥬스를 불러냅니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비틀쥬스는 36년 전 그대로입니다. 산발의 녹색 머리에, 얼룩덜룩 이끼가 낀 듯한 피부, 시커먼 이빨과 다크서클까지 다시 봐도 충격적인 비주얼로 돌아왔습니다. 분장으로도 감출 수 없는 이마의 주름이 눈에 띄긴 하지만요. 중후한 저음으로 툭툭 던지는 시니컬한 농담에 이번에도 웃음이 터집니다.

돌아온 비틀쥬스가 반갑긴 하지만, 보고 나면 제일 중요한 게 빠져 있는 것 같아 허전해집니다. 제가 비틀쥬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유령과 인간, 비정상과 정상이 역전된 상황에서 오는 독특함이었거든요.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은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지만, 얼핏 보기에 기괴해 보이는 유령들은 오히려 인간미가 있고 사랑스럽기까지 하죠. 비틀쥬스는 유령이 아닌 인간들을 퇴치하는 엑소시스트인데, 재수 없는 인간들을 골려주면서 통쾌함을 줍니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을 비정상이라 생각했던 리디아는 오히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자신의 특별함을 깨닫게 되고요.

영화 '비틀쥬스 비틀쥬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전편이 이승과 저승, 정상과 비정상이 공존하는 괴상하지만 매력적인 세계를 보여줬다면, 속편은 마냥 따뜻한 가족 영화가 돼버린 느낌입니다. 윌렘 대포, 모니카 벨루치 등 쟁쟁한 배우들이 새로운 유령들로 출연하지만 유령의 집 아르바이트생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닐 뿐, 왜 등장했는지 이유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1편이 ‘비틀쥬스’, 2편이 ‘비틀쥬스 비틀쥬스’였으니, 3편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를 위한 빌드업이라면 모르겠지만요.

이대로 끝나긴 아쉬우니, 비틀쥬스 세계관을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3부작까지 나오길 기원해봅니다. 팀 버튼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된 ‘웬즈데이’의 주인공 제나 오르테가(아스트리드 역)와 비틀쥬스의 맞대결을 보고 싶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비틀쥬스’ 최고의 명장면, 유령들이 빙의해 저녁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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