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태아 학교’에서 강연했다. 배 속 아이들에게 강의한 것은 아니고, 출산 전후 부부들이 모여 태교를 비롯해 아이가 태어난 뒤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일을 함께 경험하고 배우는 곳에 초대받아 간 것이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내의 출산을 앞둔 예비 아빠들이 7개월 산모 배 속 아이 무게만큼의 모래주머니를 착용하고 앉아 있었다. “이렇게 무거울 줄 몰랐다” “차고 10분 지났는데 벌써 눌려서 소변이 마렵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앉았다 일어나기 참 힘들겠구나” “누웠다 일어나는 것은 더 어렵겠구나” 같은, 아내의 불편함에 뒤늦게(?) 공감하는 반성의 말도 많았다.

조금이나마 고통을 나누고 공감해서일까. 강의를 시작하니 마음의 창이 한층 빠르게 열리는 듯했다. 부모의 무의식적 행동은 아이들에게 선택의 여지 없이 ‘섭취’된다는 내용을 이야기할 때였다. “부모가 몹시 다투는 것을 보는 아이들은 ‘엄마’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순식간에 사로잡힌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산모가 있었다. 예비 아빠들 눈도 벌게졌다. 이들을 ‘울컥’하게 한 지점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본인들이 자라면서 봤던 부모의 모습과 자신의 어린 시절이 소환되지 않았을까. 먹고살기 힘들고 바빴던 부모들의 삶을 이해하면서도, 자라는 동안 관심의 부재에 약간은 억울했고 또 간절했다는 이가 있었다. 부모와 대화를 많이 했다는 이들도 ‘부모 되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날 강연에선 가족의 탄생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신비한 만남’ 등을 갖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부모가 마음을 합쳐 탄생시킨 존귀한 존재들이다. 어머니의 몸에 탯줄로 연결된 존재로 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그 탯줄이 잘린 뒤 부모와의 감정과 공감의 끈까지 잘린 듯한 느낌으로 살아오진 않았나. 강의 말미에 부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을 잡고 눈을 보며 “내가 너의 안전 기지가 돼줄게”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라고 했다. 뜨거운 눈물이 강의실 온도를 높이는 듯했다. ‘어쩌다 된 부모’가 아니라 부모 됨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태아 학교가 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