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원피스’ 실사판 드라마는 과거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루피 목소리를 연기했던 강수진 성우를 섭외해 한국어 더빙판을 제작했다. /유튜브 '강수진과 빛의덕후단'
2023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원피스’ 실사판 드라마는 과거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루피 목소리를 연기했던 강수진 성우를 섭외해 한국어 더빙판을 제작했다. /유튜브 '강수진과 빛의덕후단'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총 18개 언어로 더빙(dubbing·다른 언어로 재녹음)이 제작됐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보기 좋은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전 연령이 함께 보기 위해 더빙을 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남미 지역에선 넷플릭스 시청자의 절반 이상이 한국 콘텐츠를 스페인어·포르투갈어 더빙으로 즐기고 있다.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는 더빙의 세계를 살펴봤다.

한국에선 ‘더빙파’보다 ‘자막파’가 많지만, 국가별로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글로벌 OTT는 더빙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의 경우, 평균 10개 이상 언어로 더빙한다. 제작 기간은 평균 3~5개월. ‘오징어 게임’ 이후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더빙 제작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난달 말 브라질 마라냥주의 한 쇼핑몰에서 천여명의 팬이 모여 ‘폭싹 속았수다’의 마지막회를 함께 감상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로 인기를 끌며 브라질 포르투갈어 더빙판으로 많이 시청됐다. /넷플릭스
지난달 말 브라질 마라냥주의 한 쇼핑몰에서 천여명의 팬이 모여 ‘폭싹 속았수다’의 마지막회를 함께 감상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로 인기를 끌며 브라질 포르투갈어 더빙판으로 많이 시청됐다. /넷플릭스

특히 대사가 많거나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작품에서 더빙판 만족도가 높다. 넷플릭스 더빙팀 관계자는 “‘피지컬 100’ ‘흑백요리사’ 같은 한국 예능은 정보량이 많고 말도 빠르기 때문에 더빙판이 훨씬 몰입도가 높다는 해외 시청자의 피드백이 있었다”면서 “‘오징어 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처럼 등장인물이 많고 장면 전환이 빠른 드라마도 더빙으로 더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넷플릭스·디즈니·아마존 등 전 세계 OTT를 고객사로 둔 글로벌 1위 자막·더빙 기업 아이유노에 따르면, 자막과 더빙의 제작 비율은 85대15. 더빙은 자막에 비해 최소 3배, 많게는 10배 이상의 인력을 투입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더빙에 투자하는 이유는 콘텐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오혜석 아이유노 고객 운영 부문 이사(VP)는 “어린이나 고령층은 자막판으로 감상했을 때, 자막 크기나 속도로 인해 콘텐츠에 몰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 “화면에 집중하지 않고 더빙판을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그래픽=이진영

국가별로 자막 대 더빙 선호도는 확연히 다르다. 2022년 모닝컨설트 조사에 따르면 독일(76%)·이탈리아(73%)·프랑스(61%) 등 유럽 국가는 더빙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고, 미국(36%)·한국(25%)·중국(25%)은 더빙보다 자막을 더 선호했다. 한국어에 비해 프랑스어나 독일어는 문장이 길고 구조가 복잡해 더빙판이 보기 편하다는 분석도 있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애니메이션 시장도 크고, 극장·방송용으로 외화 더빙도 꾸준히 제작해오면서 더빙 문화가 발달했다. 오혜석 VP는 “한국에선 외국어 학습에도 관심이 많아, 원어를 듣고 자막으로 이해하면서 언어를 배우려는 경향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국내에선 자막 선호도가 높긴 하지만, 외국어 콘텐츠의 한국어 더빙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핍의 살인사건 안내서’ ‘위쳐’ 등 해외 작품도 한국어 더빙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엔 16년 만에 부활한 애니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 복수의 날개’의 한국어 더빙 성우로 1990년대부터 월레스 목소리를 연기했던 유해무 성우를 섭외해 호평을 받았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언어 장벽은 더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AI를 활용해 외국어 더빙 음성과 배우의 입 모양을 일치시키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다음 달 미국 전역에선 AI 기업 플로리스가 더빙을 맡은 스웨덴 영화 ‘워치 더 스카이스’가 개봉한다. 스웨덴어로 말하는 배우의 얼굴에 영어로 더빙한 성우의 입 모양을 합성해 배우가 영어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톰 크루즈가 한국어로, 이병헌이 프랑스어로 연기하는 모습을 볼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AI 더빙 시장은 지난해 9억8000만달러(약 1조3900억원)에서 연평균 17.8%씩 성장해 2029년 22억300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