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28번째 레터30일 개봉하는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입니다. 5월초 연휴에 맞춰 개봉하는 마동석 주연작입니다. 마동석이 나온다고 하니 재밌을지 어떨지 궁금해 하실 구독자분들이 많을 듯 해서 보내드립니다. 혹시 넷플릭스 영화 ‘황야’ 보셨나요? ‘황야‘가 마동석 주먹만 있고 이야기가 빈약하다고 비판을 받았는데, ‘데몬 헌터스‘에 비하면 ‘황야‘는 선녀입니다. ‘데몬 헌터스‘는 이야기가 빈약하고 캐릭터도 없는데다 마동석 주먹마저 부실하거든요. 2021년에 촬영 완료한 영화를 4년 만에 선보이다보니 그의 주먹에 먼지가 너무 무겁게 내려앉았던 걸까요. 글쎄요, 제 생각엔 애초에 각본부터 한계가 엄연했습니다. 단순한 오락 영화로도 실망스러웠던 ‘데몬 헌터스‘, 여러분의 1만5000원을 위해 짧고 굵게 말씀드려봅니다.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는 마동석이 주먹으로 악마를 때려잡는 영홥니다. 넷플릭스 ‘황야‘는 마동석 주먹에 지구 멸망 배경을 입혔고, ‘데몬 헌터스‘는 마동석 주먹에 오컬트를 입혔습니다. ‘거룩한 밤‘은 마동석이 사장으로 있는 퇴마 회사 이름이에요. 마동석이 주먹 담당, 서현이 구마의식 담당, 이다윗이 촬영 담당입니다. 이렇게 삼인방이 퇴마 요청을 받으면 출동해서 물리쳐줍니다. 서현이 구마의식 하는 동안 악귀가 몰려들면 마동석이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이다윗이 그걸 찍어요. 왜 찍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몬 헌터스‘는 오컬트 액션이라고 홍보하지만 액션은 힘없고 오컬트는 지리멸렬합니다. 마동석한테 달려드는 악귀들은 시커먼 복장 말곤 아무런 특징이 없어서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아마도 이 영화가 가장 내세우고 싶은 마동석의 주먹, 그마저도 별거없습니다. 액션이 힘만 강조한다고 되던가요. 내다꽂더라도 최소한의 변형과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나쁜 놈이 달려든다👉마동석이 주먹을 날린다👉나쁜 놈이 쓰러진다, 끝.’ 3단계의 기계적 반복입니다.

치고받는 과정이 박진감 있거나 흥미진진하지도 않아요. 오컬트다보니 구마 의식이 몇 번 나오는데, 매우 허술합니다. ‘검은 수녀들‘에선 물이라도 열심히 부었죠. 이 영화는 그 정도 성의도 없습니다. 서현이 악귀 들린 사람 머리에 손바닥을 갖다대고 “이름을 말해!”라고 윽박지르는게 다예요. 아, 눈동자색이 허여멀건하게 변하긴 합니다. 악귀 들린 등장인물은 찡그리거나 위협하는 도식적인 표정만 보여주고, 특수효과 역시 아무런 상상력 없이 지지부진해요. 마동석표 개그가 너댓번 나오긴 합니다. 마동석이 주먹으로 문을 다 때려부쉈는데 알고보면 자동문 버튼이 옆에 있었다는 식입니다. 이런 개그는 앞뒤 상황의 긴장이 이완되며 웃음이 유발돼야 하는데 앞뒤가 늘어져 있으니 타율이 높진 않습니다.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롯데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에서 마동석의 주먹은 어느새 별개 장르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마동석이 주먹으로 나쁜 놈 때려잡는 통쾌함을 기본축으로 주변 인물과 배경만 바꾸는데, 그야 그럴 수 있지요. 익숙하고 안전한 재미라고 어디 쉽게 만들어지나요. 시리즈물이라는 게 원래 확고한 익숙함이 가장 큰 자산이니까요. 넷플릭스 ‘황야’ 공개 때 “서사가 부실하다”는 평이 나오자 마동석이 한 말이 있습니다. “‘황야‘는 액션에 힘을 줬다, ‘황야‘를 보고 서사를 얘기하는 건 돈까스집에 가서 라면 찾는 것과 같다.” 액션 영화한테 액션이 아닌 다른 부분을 과하게 요구하는 건 맞지 않다는 주장,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저도 일부 영화평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드는 ‘서사‘와 ‘개연성’ 강조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개연성. “저게 말이 돼?” 싶지만 재밌는 영화가 얼마나 많던가요. 사람 주먹으로 문짝과 바위도 때려부수는 설정으로 천만영화를 만든 마동석에겐 서사 서사 서사 하는 비판이 장르의 특성을 무시한 지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관객은 마동석 영화를 선택할 때 애초에 서사를 크게 기대하지 않거든요. 마동석이 주먹으로 인생의 비의를 파헤치고 인간성의 본질을 논할 거라 생각하고 그의 영화를 보러가는 사람이 있을까요. 딴 건 모르겠지만 재미 하난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거,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한 한 가지가 확실할 거라고 믿고 가는 것이죠. 그런데 마동석 영화를 보고 나서 서사 얘기가 나온다면, 그건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미가 왜 없느냐, 신작 영화가 가져야할 최소한의 새로움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락 영화에 기대하는 새로움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닙니다. ‘범죄도시’ 1편과 2편이 다른 재미를 줬던건 2편에서 손석구(강해상)라는 새로운 악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편 윤계상과는 완전히 다른 악인을 만나는 재미가 확실했죠. 강해상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짐작하기 어려운 악인의 행보에 긴장하게 됐고요. ‘데몬 헌터스‘는 그런 인물이 한 명도 없습니다. “이름을 말하라” 외침 외엔 별 능력이 두드러지지 않는 퇴마 담당, 비디오 들고 왔다갔다 하는 거 외엔 왜 있는지 잘 모르겠는 촬영 담당, 괴로워하고 있지만 어떻게 구해질지 처음부터 알겠어서 흥미가 가지 않는 피해자, 막강한 빌런으로 설정됐지만 공포의 기운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최종 보스. 관객은 어디에 마음을 줘야할까요. 던져만 놓고 주워담지 못하는 일부 설정까진 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롯데엔터테인먼트

마동석은 한국 영화에 확고한 위상을 가진 배우입니다. 배우로는 물론이고 제작자로도 그렇습니다. ‘범죄도시‘는 물론이고 ‘그 영화 어때’ 120번째 레터에서 백수진 기자가 소개해드린 ‘백수아파트’는 마동석이 제작한 영화입니다. ‘데몬 헌터스‘에도 출연한 경수진이 주연배우로 활약했죠.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영화를 원하는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충분한 영화였어요. 그런 위치에 오른 마동석이 관객을 위해 보여주고 싶은 ‘진짜 마동석 영화‘가 ‘데몬 헌터스‘인건가요. 돈까스집을 찾아가 맛있는 돈까스를 달라고 하는 관객에게 라면을, 그것도 맛없는 라면을 내놓고 싶으신 건 아닐거라고 믿습니다. 스파이더맨의 벤 삼촌이 일찍이 말씀하셨죠.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마동석의 차기작을 더욱 기대하며,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