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라, 이번에 활자만 들어가요?” “세네카 폭은 제대로 나왔어?”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한 장면. /tvN

출판·인쇄 업계 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도비라(とびら·문짝)는 본문에 들어가기 전 책의 제목과 안내글 등을 넣는 속표지. 세네카는 서가에 책을 꽂았을 때 보이는 부분인 책등을 말하는데, ‘등, 뒷면, 뒤’를 뜻하는 일본어 세나카(せなか·背中)에서 왔다.

우리나라 근대 출판과 인쇄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출판 현장엔 아직도 수많은 일본어가 남아있다. 지난 574돌 한글날을 맞아 열린 제12회 집현전 학술대회에서 ‘출판·인쇄 분야 용어의 실태와 순화 방안’을 발표한 이재성 서울여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출판·인쇄 분야의 일본어 용어는 5000개가 넘는다”며 “일본에서 들어와 도제 체제로 운영됐기 때문에 일본어 용어가 일종의 표준 용어처럼 사용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출판·인쇄 분야의 용어는 크게 인쇄⋅종이⋅출판⋅제본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특히 인쇄 쪽에 일본어가 많이 남았다. 하시라(판면 바깥 여백부에 짜 넣는 제목의 일종)는 ‘기둥제목’으로, 하리꼬미는 ‘터 잡기’로 바꿔 쓸 수 있다. 이 교수는 “도제 체제로 전문 기술이 전수되고 새로 이 분야에 진입하는 교육생에 대한 초기 교육을 일본어 용어를 쓰던 현장 실무자가 담당하면서 일본어 용어가 아무 문제 의식 없이 확대 재생산됐다”며 “대부분의 인쇄 기자재가 일본에서 수입되면서 일본어로 된 기계 부품명이나 사용 방법 등이 우리말로 순화되지 못한 채 사용됐다”고 했다.

출판·인쇄 분야에서도 우리말 순화 작업이 꾸준히 진행돼 왔다. 1984년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과 서울특별시 인쇄공업협동조합이 출판·인쇄 분야 용어 5000여개를 수집, 정리한 뒤 국어연구소 내 국어순화위원회에서 최종 심의해 1986년 국어순화 용어 1384개를 제정했다. 이 단어들을 정리해 발간한 ‘인쇄용어’는 이후 출판·인쇄 업계에서 발간되는 용어집의 기반이 됐다.

출판 현장도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이런 말은 줄어드는 추세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일본에서 배운 스타일대로 작업하던 사수들이 나가고 새로운 세대가 들어오면서 일본어 용어도 많이 줄고 있다”며 “인쇄 환경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사라지는 용어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하리꼬미(터 잡기)는 인쇄판을 만들기 위한 페이지 작업인데, 이제는 필름을 뽑지 않고 바로 인쇄소에 파일을 넘기기 때문에 ‘터 잡기’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재성 교수는 “최근 들어 전자 출판이 활발해지면서 일본어는 주는 반면 영어나 독일어 용어가 늘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말로 순화해 부르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