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적 디자인의 옷이나 신발이 클래식(고전)이 됩니다. 그렇게 검증된 물건들을 먼저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구동화’는 볼 때마다 아쉬워요.”
패션 벤처기업 ‘더뉴그레이'의 권정현(32) 대표는 “중년 이상 한국 남자들의 옷이 이상한 건 기본을 안 지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예로 든 ‘구동화’란 구두와 운동화를 합친 패션계 은어로, 편한 신발만 찾는 남자들이 양복 바지에 신는 일종의 유사(類似) 구두를 가리킨다. 구두의 정중함과 운동화의 편안함을 다 잡겠다는 것이겠지만 실제론 구두도 운동화도 아닌 정체불명의 신발로 간주될 때가 많다. 권 대표는 “구두나 운동화의 모양에서 많이 변형돼서 정장에도 캐주얼에도 어울리지 않는 신발이 돼버렸다”고 했다.
권 대표가 2014년 창업한 더뉴그레이는 50~60대 남성들을 주인공으로 패션 콘텐츠를 만든다. ‘꽃중년’으로 유명한 미국 모델 닉 우스터를 보며 “우리에겐 왜 멋진 아저씨가 없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대표 콘텐츠는 패션 스타일링으로 남자들을 변신시키는 ‘메이크오버’. 2018년 시작해 얼마 전 500명을 넘어섰다. 소문을 타면서 뉴발란스·미니(자동차) 같은 유명 브랜드와도 협업했다. 권 대표에게서 ‘기본을 지키며 옷 입는 법’을 들어봤다.
◇옷차림 전체에 색상은 네 가지 이하로
때로 기본이 가장 어렵다. 한국 남자들이 패션에 소극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그가 발견한 ‘아저씨 옷’의 공통적 문제는 색상도 무늬도 의외로 과하다는 점이다. “패턴(무늬)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 패턴에 또 색이 쓰입니다. 티셔츠 하나에만 서너 가지 색깔을 넣기도 해요.” 기능성 골프·등산복과 청바지와 정장 벨트가 뒤섞인 이종교배, 여전히 너무 긴 바지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그는 “색상은 흰색·검은색·감색·갈색·회색 중에서 네 가지 이하로 쓸 것”을 제안했다. 상·하의 색상의 무게감을 달리하는 상농하담(上濃下淡) 또는 상담하농(上淡下濃)도 유용한 전략이다. “네이비 재킷에 베이지색 바지는 괜찮지만 검은 바지는 무난할 순 있어도 멋스러워 보이긴 어렵죠.”
어떻게 입을 것인가만큼 무엇을 입을 것인지도 중요하다. 권 대표는 옥스퍼드 셔츠를 가장 먼저 꼽았다. 넥타이와도 궁합이 좋지만 살짝 가슬가슬해서 캐주얼 느낌도 나는 셔츠다. “남자 옷의 종류를 하나하나 분류해 본 적이 있어요. 세세하게 따져도 60개 정도더라고요. 셔츠와 기본 색상의 면바지·청바지를 먼저 갖춘 뒤에 재킷을 하나씩 더하고, 트렌치코트 같은 외투를 추가하는 식으로 옷을 늘려가면 됩니다.”
◇아직은 패션이 어색한 아빠들
메이크오버를 거쳐간 남자들은 거의가 중·장년의 아빠들이다. 대체로 자녀들이 대신 신청하고 아빠들은 쑥스러워한다. 권 대표는 “하나같이 결혼한 뒤로는 아내가 다 해줘서 직접 옷을 살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는 분들”이라고 했다.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아빠랑 같이 찍은 사진이 고등학교 이후론 없다는 걸 깨닫고 신청했는데, 정작 아빠가 안 하겠다는 바람에 PPT(파워포인트) 자료까지 만들어 설득한 딸이 있었어요. 이혼 위기를 겪고 있는 아빠가 엄마와 조금이라도 다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신청한 아들의 사연도 기억나네요.”
권 대표는 “앞으로는 아빠에 이어 농부, 참전 용사, 택배 기사 등으로 대상을 넓혀갈 생각”이라며 “패션으로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인식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