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도심에 펭귄의 무리가 출현하던 때가 있었다. 검은 양복 바지에 흰 반팔 셔츠를 차려입은 직장인 남성들. 폭염에 재킷까지 걸치기 어렵다 보니 연출되던 풍경이다. 셔츠 한 장으로 나야 하는 여름은 멋 내기 쉽지 않은 계절이다.

티셔츠 위에 걸친 마드라스 체크 셔츠. 빨강, 노랑, 초록 등 여러 색깔이 섞여 있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한 색조여서 요란하지 않다. 버튼다운 칼라에 긴소매 디자인은 출근 복장으로도 손색이 없다(작은 사진). /바버샵

다행히 요즘 여름 셔츠는 화려해지고 있다. 과감한 체크무늬 셔츠, 인조 실크나 수건 옷감처럼 독특한 소재의 셔츠가 인기다. 다른 계절에 입는 보통의 셔츠에는 잘 보이지 않는 특징들이니 이런 화려함을 여름만의 특권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여름엔 마드라스 셔츠

대표적 여름 옷감인 리넨이나 시어서커는 까슬까슬 올록볼록한 촉감이 특징. 반면 마드라스(madras)는 특유의 색감과 무늬로 기억된다. 마드라스는 인도 도시 첸나이의 옛 이름으로 이곳 특산 면직물이 마드라스다. 원래 작업복을 만들던 수수한 옷감이었으나 영국 영향으로 타탄 체크(굵기가 다른 여러 색을 바둑판처럼 엇갈린 무늬)가 들어가 마드라스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원조 마드라스는 손으로 짜서 성글다. 가볍고 통기성이 좋아 여름 셔츠로 그만이다. 남성복 편집숍 바버샵 황재환 대표는 “원래는 색감이 화려해 평상복보다는 리조트 웨어(휴양지에서 입는 옷)로 많이 입었다”면서 “미국에선 고급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낸 부잣집 자제들이 방학이 끝난 뒤에도 마드라스를 입으면서 아이비리그로 퍼져나갔다”고 했다.

위트 있는 꽃게 그림이 들어간 레이온 셔츠(위). 페이즐리(구부러진 깃털 모양) 무늬가 촘촘하게 들어간 셔츠도 생각보다 요란하지 않다. /드레익스·유니버셜 오버롤

오리지널 마드라스는 빨수록 물이 조금씩 빠지면서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변해간다. 블리딩(bleeding·출혈)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 때문에 소비자의 원성을 샀지만 전설적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물 빠져야 진짜’라는 카피로 상황을 단숨에 뒤집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요즘은 꼭 인도에서 만들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무늬의 옷감을 마드라스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무늬가 크고 색이 강해 출근용으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청색이나 녹색 계열을 고르면 차분해 보인다. 요즘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바지 통에 맞춰 셔츠도 살짝 여유 있게 입는 추세다.

◇인견·타월… 색다른 소재도

(왼쪽부터)잔잔한 페이즐리 무늬를 전체적으로 넣은 오픈 칼라 셔츠, 굵은 줄무늬의 수건 소재로 만든 셔츠, 위트 있는 그림이 들어간 레이온 셔츠. 여름 남자 셔츠의 개성이 뚜렷해지는 추세다. /유니버설오버롤·바버샵·드레익스

요즘 유행 중인 셔츠 중에는 소재로 독특한 느낌을 준 것들도 있다. 레이온(rayon)이 대표적이다. 인조 실크인 레이온은 실크처럼 찰랑거리며 피부에 닿는 느낌이 청량하다. 하와이 ‘알로하 셔츠’를 만드는 소재답게 레이온 셔츠에도 대개 화려하고 과감한 무늬와 그림이 들어간다. 깃(칼라)은 일반적인 셔츠와 달리 작은 양복 깃처럼 평평하다. 이런 디자인 때문에 시선을 잡아끄는 효과가 확실하지만 물세탁하면 줄어들 수 있어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보통 드라이클리닝이 권장된다.

수건 옷감인 테리(terry)로도 셔츠를 만든다. 원래 물놀이하다가 잠깐 쉴 때 젖은 몸에 걸치도록 만든 옷이다. 휴양지에 온 듯 여유로운 느낌을 주지만 무늬가 잔잔한 테리 셔츠는 세련되면서도 단정해 보인다.

셔츠가 화려할수록 바지는 단순하게 입어야 안전하다. 바지까지 무늬가 있거나 색이 화려하면 어지러울 수 있다. 청바지나 베이지·카키색 면바지처럼 가장 기본적인 바지가 잘 어울리고 흰색 바지와도 궁합이 좋다. 유튜브 남성패션 채널 ‘풋티지 브라더스’를 운영하는 강원식씨는 “바지 고르기가 어렵다면 셔츠에 들어간 색깔 가운데 하나를 골라 톤온톤(비슷한 색조의 색을 매치하는 방법)으로 입으면 된다”면서 “무늬 있는 셔츠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입어보면 생각처럼 튀거나 요란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