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패션공습’

여러 분야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두 나라지만, 패션계에서는 중국의 선공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우리말로 된 ‘쉬인’ 앱 페이지. 매일 새로운 제품이 수천 개 나온다고 강조하고 있다. 초저가 물량 공세로 패스트패션 시장을 뒤흔들었다. /Shein 앱

중국발(發) 패션 플랫폼 ‘쉬인(Shein)’의 공습에 미국 최대 쇼핑 사이트 아마존이 무릎을 꿇었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쉬인은 지난 5월 기준 아마존을 제치고 미국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쇼핑 앱이 됐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의 쉬인이 미국 패스트패션 시장에 맹공을 퍼부었다(China’s Shein storms US fast fashion)며 쉬인의 상승세에 놀라는 모습이다.

패스트패션이란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에 맞춰 옷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스템. 그동안 스웨덴 브랜드 H&M 등이 굳건한 ‘왕좌’를 지키고 있던 자리였다. 2008년 설립된 이후 2012년 지금의 패션 사이트로 공식 출범한 쉬인은 패스트패션이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의 ‘극한’을 보여준다. 빠른 것은 더 빠르게. 많은 양은 더 많게. 싼 건 더 싸게.

기존 패스트패션이 디자인·제작·생산유통 등에 2~3주가 걸렸다면 쉬인은 최대 5일 정도로 대폭 줄였다. 중국의 동대문이라 불리는 광저우 등에서 대량생산한다. 하루에만 6000개 상품을 만드는데 재고율이 6%. 빅데이터를 활용해 잘 팔리는 상품을 빠르게 골라내는 ‘선택과 집중’. 전 세계 220여 나라에 판매하며 판매 단가를 낮췄다. 또 유명 스타와 인플루언서 등을 통해 MZ세대에 ‘쉬인하울(sheinhaul)’을 유행시켰다. 하울은 잘난 척하며 리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액세서리·의류 등 수십 개의 아이템을 겨우 10만원에 사서 보여주며 자랑하는 게 유행이 됐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수천만원짜리 ‘명품 하울’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이 저렴한 금액으로 감각을 뽐낼 수 있는 ‘가성비템’에 매료된 것이다. 올 초엔 신진 디자이너 500여 명을 발굴해 협업하는 ‘쉬인X’ 프로그램을 선보여 실력은 있지만 자본이 없는 전 세계 디자이너에게 ‘기회’를 줬다. 소비자들은 ‘내 돈으로 디자이너의 자립을 도울 수 있다’는 의미까지 찾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 갈등의 ‘수혜주’로도 꼽힌다. 중국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상품에는 사실상 수출세를 부과하지 않고, 미국은 2016년 관세 면제 한도를 800달러로 높인 상태다. 소비자에게 직배송하는 쉬인은 저렴한 가격 덕분에 중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셈이 됐다. 의류 기준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판매할 경우 수출세 7.5%를, 수입세 16.5%를 관세로 내야 한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패스트패션’은 최근 패션계에서 가장 죄악시되는 단어 중 하나였다. ‘싼 맛’에 입고 버리는 의류 폐기물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꼽혀왔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보고서에 따르면 합성섬유가 완전히 분해되는 데에 200년이 걸린다. 외신들은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점점 지속가능성을 내세우고 있는 요즘, 쉬인의 돌풍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