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좀 심으신?”(이) “그건 아니고요.”(윤) “뭔가 교정을 하신 듯 느낌이 드는데.”(이) “아뇨 전 염색만.”(윤)
지난 12월 2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지방신문협회 주최 지방자치대상 시상식. 그간 은발에서 흑발로 변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에게 시선을 돌려 묻는다. 오랜만에 마주한 중년 남성이 ‘탈모’나 ‘염색’ 같은 소재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무대를 정치로 옮기면 함의는 훨씬 깊고 넓어진다. TV 정치 시대를 연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59년에 쓴 에세이 ‘정치 세계를 바꾼 힘(A Force That Has Changed The Political Scene)’에서 패션을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의 힘을 강조했다. 이재명·윤석열·안철수 후보의 패션 스타일에 대해 국내 전문가 10인에게 물었다. 아쉽게도 실명 공개에는 소수만 동의했다.
◇회색의 달인 이재명, 진화의 달인 윤석열
전문가들은 이재명 후보에 대해 “상대에 따른 맞춤 공략에 능숙하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당 후보 경선에선 이낙연 후보에 맞서 중후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회갈색 염색을 했고, 대선 주자로 나선 뒤엔 젊음의 짙은 색으로 돌아왔다.
남성복 카루소의 박성목 실장은 “이 후보의 패션 전략은 우파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면서 “정치인 패션으로는 잘 안 쓰는 회색을 앞세워 거친 이미지를 줄이고 유권자에게는 편안하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명품 업계에서 말하는 일명 ‘포장지론’이다. 명품을 경험하는 첫 단계인 포장부터 차별화시킨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의 헤어스타일은 유권자들에게 가장 쉽게 각인되는 요소 중 하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헤어스타일은 그의 존재감과 상징성, 후보간 차별화를 드러내는 묘수”라고 설명한바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날아가는 듯한 백발 가닥’은 ‘쉼없이 일하는 사람”의 표상이며, 40대 ‘젊은’ 정치인의 희끗희끗한(salt and pepper) 머리는 진지함(gravitas)을 더해준다고 했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 당선 당시엔 ‘헤어스타일 총선’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후보간 머리 모양을 내세운 이미지 다툼이 상당했다. 후보이름과 헤어스타일을 딴 트위터 팬계정도 생겼을 정도다.
윤석열 후보는 스타일 변신에 가장 성공한 후보로 꼽혔다. 한 전문가는 “지난해 3월 검찰총장직 사퇴 이후 후보로 거론될 당시만 해도 퉁퉁한 뱃살 때문에 벨트가 허리선 밑으로 처지고 재킷 단추가 풀리는 등 격식에 맞지 않는 모습이 간혹 보였다”면서 “벨트를 제자리로 올리고, 앞머리에 볼륨을 주어 위로 띄우면서 품위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외출할 때 자주 포착되며 윤 후보 스스로 “피부 같다”고 말했던 회색 패딩에서 재킷과 트렌치 등으로 외투도 다양해졌다. 강재영 유니페어 대표는 “최근 마트 쇼핑 때를 보면 셔츠 위에 스웨터를 겹쳐 입고 그레이 스트라이프(줄무늬) 플란넬(얇은 모직물) 재킷으로 세련되고 온화한 이미지를 더했다”고 말했다.
◇이재명의 터틀넥, 윤석열의 반듯한 이마, 안철수의 짙은 눈썹
이재명 후보에게선 ‘터틀넥 정치’가 눈에 띈다. 실용적이면서도 우파도 좌파도 아닌 느낌을 강조할 때 이용된다. 2019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샤를 미셸 유럽평의회 의장을 만나는 자리서 시도해 화제가 됐다. 은행가 출신 마크롱은 전형적인 ‘캐비어 좌파’에서 중도 우파로 돌아섰다. 중세 기사의 목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한 터틀넥은 1970~80년대엔 미셸 푸코 같은 프랑스 지식인의 유니폼이었다.
윤석열 후보는 이마를 완전히 드러내고, 소매끝이 딱 맞게 단정한 길이로 맞춰 입으면서 ‘격’이 살아났다고 평가받는다. 패션계에선 “미 트럼프 대통령 스타일에서 영국 데이비드 카메론 총리 스타일로 변신했다”고 설명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보수당 엘리트인 카메론은 큰 체형에도 잘 맞는 의상으로 ‘옷 잘 입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박성목 실장은 “정치인의 교복인 남색·블랙 슈트를 몸에 잘 맞게 재단해 입고 반듯한 이마를 드러내면서 신뢰감 주는 지도자 풍모를 풍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비즈니스 슈트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후보로 꼽혔다. 넥타이 색상을 슈트와 맞추거나, 짙은 색으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처럼 크지 않은 키에도 당당해 보이는 이유다. 눈썹 문신으로 좀 더 확고하고 분명한 인상으로 국민에게 다가섰다. ‘강철수(강한 안철수)’라는 애칭도 생겼다.
강재영 유니페어 대표는 “넥타이 매듭도 좀 더 세련되게 다양해졌고, 유튜브에선 국민의당 색인 주황색이나 당색을 초월한 회색 크루넥(라운드) 니트로 포용성을 넓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