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가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갓섬웨어’의 제품과 전시회 퍼포먼스 등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갓섬웨어는 래퍼 출신의 디자이너 남아기(Aggie Nam)가 만든 1인 독립 아이웨어 브랜드다. 시력을 교정하고 눈을 보호하는 안경과는 달리, 이 브랜드는 패션 용도로 개성 넘치는 아이웨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팝가수 자넬 모네가 ‘2019 멧갈라’에서 갓섬웨어의 제품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남아기는 지난 9일 “메종 마르지엘라가 디자인을 표절하고 퍼포먼스를 무단 도용했다”며 입장문과 비교 사진을 올렸다. 표절 의혹을 받는 제품은 수십 개의 렌즈를 체인으로 엮은 형태의 아이웨어다. 갓섬웨어는 2019년 이 제품의 착용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메종 마르지엘라가 지난해 9월 홈페이지에 공개한 ‘22년 SS컬렉션’ 영상에는 갓섬웨어의 아이웨어와 흡사한 제품을 착용한 모델이 등장한다.
또 갓섬웨어는 그해 국내에서 전시회를 열고, 해당 제품을 착용한 모델이 디제잉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마르지엘라의 영상에도 이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남아기는 “지난해 9월 사건 발생 당시에는 정신적으로 큰 논란을 감당하기 싫은 상태였고, 패션 예술계에 환멸을 느끼고 있어 (메종 마르지엘라)와 협업인 척하며 유머로 승화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저 개인 만의 일이 아닌 세상 모든 창작자와 소상공인, 개인들을 상대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거대 기업의 횡포”라며 “같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창작자로서 최소 권리를 되찾고자 늦게나마 사건을 바로잡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메종 마르지엘라 측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남아기는 10일 조선닷컴에 “당시 갑자기 디자인이 떠올라 재료를 90% 재활용해 하룻밤새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판매하지 않았어도 판매 권한 및 저작권은 저에게 있다고 본다.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디자인과 무대 퍼포먼스 등을 그대로 도용하는 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온라인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알리는 티저 영상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영상 및 무대 콘셉트만을 위한 소품에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고 했다.
◇ 패션디자인 저작권 시비…어떻게 해결하나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이재경 변호사(건국대 교수)는 “패션 디자인은 주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법적 보호될 수 있다”며 “다른 산업디자인들과 달리 패션디자인의 경우, 국내 디자인보호법상 보호 요건을 충족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패션디자인 보호에 있어 관련 법은 거의 활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품 에르메스코리아가 국내 브랜드 ‘플레이노모어’를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 금지 청구 소송이다. 2020년 대법원은 플레이노모어의 눈알 모양의 장식만 추가한 가방은 성과물을 도용한 부정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약 타인의 디자인을 침해한 디자이너가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해아 할까. 이 변호사는 “각종 콘텐츠의 경우 해당 지식재산권이 성립된 시기에 따라 보호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어떠한 디자인이 먼저 출시됐다면 원칙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소셜미디어는 시공을 초월하는 특징이 있다. 디자인을 담은 콘텐츠가 출시되거나 게시된 시점이 명확하다면, ‘그런 디자인이 있는지 몰랐다’고 항변하더라도 오히려 베끼지 않았다는 걸 입증할 책임이 사실상 발생한다”고 했다.
유명 브랜드가 국내 중소‧중견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은 많지만, 이번 갓섬웨어 사건처럼 세계적인 패션 기업이 1인 브랜드를 표절했다는 의혹은 드문 경우다. 이 변호사는 “대부분 1인 브랜드들은 혼자서 디자인, 제조, 홍보, 판매 등을 모두 감당해야 할 만큼 영세하기 때문에 법적 소송을 진행할 경제적 사회적 여력 등이 부족하다. 갓섬웨어 경우에도 소송으로 이어지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