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티크 플래그십 매장에서 고객이 시향지(향을 맡아볼 수 있는 종이)로 향을 경험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냄새를 잘 못 맡게 되니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처음엔 ‘다이어트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무기력해지고 피곤하기만 하고...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랄까. 이젠 좀 나아졌으니 봄 향기도 적극적으로 맡아보려고요.”

최근 한 백화점에서 만난 직장인 김예지(36)씨는 코로나 자가 치료로 완치된 뒤 가장 먼저 향수 매장을 찾았다고 했다. 그동안 고생한 코에 그윽한 향기로 보상해주고 싶다고 했다. 예전 광고 문구를 빌자면 ‘내 코는 소중하니까요’란다.

이른바 ‘코르가즘(코로 향기를 맡을 때의 쾌감을 뜻하는 신조어)’ 시대다. 코로나 감염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로 ‘후각 상실’이 꼽히면서 ‘후각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프랑스 장인 브랜드 ‘오르메’, 프랑스 비건 니치 향수 ‘썽봉’, 프랑스 조향 브랜드 ‘메종 21G’ 등도 국내 속속 상륙해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가로수길에 정식으로 문을 연 프랑스 니치 향수(소량 생산하는 고가 향수) 브랜드 ‘딥티크’의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단독 매장) 건물을 찾았을 때도 ‘코르가즘’을 외치는 이가 적지 않았다. 2층 높이의 프랑스 가정집처럼 구성돼 있는 매장은 약 260㎡(78평)로 전 세계 최대 규모. 지난달 26일에는 1200명이 찾는 등 가오픈 기간인 2월 26일부터 한 달 간 누적 방문객 수는 1만 6500명에 달했다. 대학생 윤자영씨는 “코로나 3년간 마스크 쓰고 다니느라 정말 코가 많이 시달린 거 같다”면서 “마스크 쓰지 않아도 되는 집에서라도 좋은 향을 잔뜩 느끼고 싶어 향초와 방향제를 구비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5년 약 5000억원이었던 국내 향수 시장 규모는 내년에는 6500억원을 돌파할 전망. 그중 고가 프리미엄 니치 향수가 90%를 차지한다. 여성 청결제를 만들다 천연 향수를 내놓은 벨라랩의 성정민 대표는 “코로나 때문에 자연 그 자체를 느끼고 싶어 하는 이가 많아져 천연 향 개발까지 하게 됐다”며 “코로나 이후 두통이나 각종 후유증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아져 향도 더 민감하게 따진다”고 말했다.

온라인몰 에스아이빌리지(S.I.VILLAGE)에서 니치 향수 브랜드의 평균 매출은 전년 대비 107.8% 늘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023%나 증가했다.

숫자 면에서만 증가한 것도 아니다. 해외에선 코로나 시기를 맞아 향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역사과학연구소에선 베스트셀러 소설 ‘향수’속에 배경이었던 18세기 당시 같은 옛 향기를 재현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코로나 이후 후각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 가장 큰 이유. 냄새, 향기, 향료, 향 산업 등 후각을 통해 이뤄지는 많은 작업들이 인류사에 크나큰 역할을 한 것을 재조명하는 과정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단백질과 대사 연구 등을 통해 향을 추적한다. .

오래된 향기를 재현해 그 당시부터 이어온 역사적 경험이나, 인간 행동 등에 대해 연구하며 현재와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향은 위험한 것을 미리 감지하고, 몸에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게 해줄 수 있는 창구다. 또 향료를 구하기 위해 장거리 무역은 물론 전쟁까지 감행한 걸 보면 향기가 인류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향을 통해 각종 종교적 의례, 위생, 요리, 무역과 교역 등은 물론 사회적 위계 질서와 소속 집단 정체성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 포브스지는 최근 “코로나 팬데믹에 후각이 행복지수를 얼마나 좌우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혼자 있을 때 조용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나만의 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거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