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가방’ ‘한동훈 스카프’ ‘한동훈 코트’ ‘한동훈 안경’…. 화제성으로 보자면 톱스타 연예인 못지않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모습.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슈트가 잘 어울리는 외형이기도 하지만, 패션 전문가들은 "클래식 정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이 정도로 완성도 있는 슈트 스타일을 선보인 정계 인물이 드물어, 중장년층은 물론 직장인, 주부, 옷에 관심 많은 2030 세대까지 두루 '한동훈 스타일'에 관심을 보였다. 이날 독특하게 맨 붉은빛 스카프와 국내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 가방 등 역시 화제가 됐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출근길 패션 면면이 화제다. 착용한 제품의 브랜드명이나 가격은 기본. 스카프를 맨 방식부터, 넥타이 딤플(보조개·넥타이 맸을 때 가운데 쏙 들어가는 것) 연출, 바지 밑단을 접어 올린 것(턴업) 등 어떻게 입었는지가 거의 ‘해부’ 수준이다. 각종 커뮤니티에선 ‘칼주름 바지에 턴업, 옷매무새 정리까지 빈틈없어 보인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것 같다’ ‘찢어진 구두쇼보다 반질반질한 구두 차림이 훨씬 솔직하다’는 등 ‘인상 비평’이 잇따랐다.

15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클래식 정장에서 자주 연출하는 바지 턴업(밑단을 접어 올리는 것. 보통 4~5cm 정도)은 물론 넥타이, 구두 색상을 맞춰 포인트를 줬다. 베이지색 맥코트(방수소재로 만든 코트로 최근엔 싱글 버튼 재킷을 통칭하기도 한다. 스코틀랜드 맥킨토시가 만든 원단에서 착안)도 화제였다. /뉴시스

패션이 정치를 만나면 메시지가 된다. 한 후보자의 각종 발언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면 떠오를수록 그의 패션은 이전과 다른 힘을 갖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최측근이자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면서 흔한 넥타이 하나에도 메시지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때 착용한 붉은빛 스카프의 경우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현 당선인에 대한 지지를 붉은색으로 돌려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또 최고가 명품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0만원대 스카프, 30만원대 국내 디자이너 가방 등 일명 ‘가성비템’을 착용한 것도 직위와 신분 등을 고려한 선택이라는 평이다. 한 후보자의 서류 가방(브리프케이스) 브랜드로 알려진 데이빗앤헤넬은 멋쟁이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난 바 있다. 의상학을 전공한 오승열 대표가 디자인부터 생산 전반을 담당하며 지난 2011년 선보였다. 한 후보자의 서류 가방은 홈페이지상 34만 9000원으로 현재 품절.

오 대표는 “한동훈 후보자 가방으로 화제가 된 뒤 구입 문의가 밀려 들었다”면서 “코로나 이후 해외 원피 수급에 어려움이 있어 같은 디자인 제품을 추가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진 상으로 살펴본 결과 한 후보자의 가방은 10년 전 초기 디자인으로 보인다”면서 “당시엔 20만원 대였다”고 말했다. 이헌 패션칼럼니스트는 “공직자 직분에 맞게 카메라 앞에서 사치스럽지 않은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가격 대비 고급스러운 취향을 보여준다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2차 내각 발표 기자 회견장에서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한 후보자의 마스크 색과 넥타이 색이 '맞춤'한 듯 같다며 화제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마스크 색상을 의상과 맞춘 경우가 종종 눈에 띄었다. 또 넥타이 딤플(쏙 들어가게 매는 것), 넥타이 핀 등도 한 후보자 스타일을 완성하는 요소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2차 내각 발표회.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소매 끝을 맞추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자신을 체크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평소의 깔끔함을 엿볼 수 있다. /윤석열 유튜브

한 후보자에게는 ‘조선 제일검’이란 별명이 있다. 칼같이 재단된 의상에 마스크 색깔 맞춤 역시 그의 완벽주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미 패션디자이너는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처럼 깔끔한 의상으로 일처리도 깔끔하다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에 따르면 “같은 값이라도 좀 더 고급스럽게, 매력 있게 보이도록 옷을 소화하는 사람들이 더 유능하게 보인다”고 했다. 미국 경제 매체 INC는 “옷이 업무 능력(performance)을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며 “깔끔하면서도 효율적인 작업 성과를 강조하고 싶다면, 날카로운 주름을 드러내고 깨끗한 신발과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는 옷을 입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2016년 10월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로이터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는 걸 두고 ‘빼 입은 듯’ 화려하게 치장하라는 건 아니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에겐 대중의 눈높이가 중요하다. 200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6년간 독일 총리였던 앙겔라 메르켈이 대표적. 평범한 바지에 엉덩이까지 오는 밝은 색상 블레이저(재킷)는 그녀를 상징했다. 거의 같은 디자인에 무지개처럼 색상만 다채롭게 바뀌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에선 너무 외모나 패션에 신경 쓰면 진지해 보이지 않는다는 관념이 여전하기 때문에, 예의를 차리면서 권위를 투영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색색의 블레이저를 택한 듯 보인다”면서 “비슷한 스타일을 트레이드 마크 삼아 일관성과 안정성을 대중에게 심어줬다”고 평했다.

옷은 그저 옷일 뿐이지, 왜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정치에서 패션은 ‘언어 없는 의사소통 도구’로 평가받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사진이 어떤 텍스트보다 빠르게 퍼지는 소셜 미디어 시대에 시각을 지배하는 옷이 중요한 의사소통 역할을 한다”면서 “한정된 시간에 모든 정치 철학을 쏟아내기 어려울 때, 우선 스타일로 피력하는 것”이라고 썼다.

지난해 국회에 멜빵 청바지 입고 등장한 류호정 의원. /이덕훈 기자

국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MZ 세대를 대표하는 의원 중 하나로 꼽히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비리 타파’를 외치며 영화 ‘킬빌’의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하는 등 원피스, 멜빵 바지 등으로 파격 패션을 주도했다. 류 의원의 과감한 ‘패션 정치’는 소수 정당의 약점을 극복하겠다는 의지. 류 의원은 “존재가 지워진 사람들의 절박함을 (옷으로) 알리겠다”고 강조했다.